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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양승훈
- 17,820원 (10%↓
990) - 2024-03-28
: 3,735
- 제조업과 산업도시, 한국 노동자 중산층의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의 책. 자연스레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오월의봄)을 떠올리게 한다. <중공업 가족…>이 거제 조선소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제조업과 노동계급의 형성과 위기의 한 전형을 사회학‧인류학적 르포르타주 형식을 배합해 그려냈다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더욱 학술 보고서적인 접근을 통해 울산을 중심으로 산업도시, 노동계급의 한 전형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기획이다.
- 생산성 동맹: 저자는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책에서는 ‘생산성 동맹’이라고 자주 표현된다. 자본, 노동, 국가의 산업 발전을 위한 동맹을 뜻한다. ‘코포라티즘’의 장점은 계급투쟁의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산업자본주의 국가의 세부적이고 정책적인 발전 동학을 파악하는 동시에 노동대중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관점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보기에 따라) 자본의 이익을 ‘너무 존중’하는 관점을 견지(또는 자본주의 산업 국가의 발전을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확정하고 있다는 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생산성 동맹’ 성립을 충실하게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생산’과 ‘제조업’에 천착하는 이 저자의 저술에는 항상 큰 관심이 간다.
- “한국에서 평범한 노동자 가족 3대를 꿈꿀 수 있을까?”, “노동자가 성실히 일해서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꿈”, “시험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제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10장). 저자는 한국에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실에 근접했던 곳의 대표 도시로 ‘울산’을 지목한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라는 한국의 수출형 제조산업 핵심들이 모여 조성된 이 도시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현재의 상황은, 울산이라는 한 도시의 쇠락이 아닌 한국형 모델의 붕괴를 뜻한다는 것. 그러한 측면에서 ‘울산 디스토피아’는 곧 ‘한국 산업도시’의 자멸 과정을 뜻한다. 한국형 모델의 여러 한계지점들(특히 “산업 가부장제”적 양상)을 고려하더라도, 어쨌든 제조업이라는 실물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그 기여도를 인정받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경험 모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 구상과 실행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산업도시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변모하는 울산의 현재에는 노, 사, 정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자본은 사회적 의의와 지속 가능성을 무시한 채 구상 기능의 분리와 노동의 생산 비중 저하(자본을 위한 기계화)에 매진하고, 노동계급은 생산성 향상과 발전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기보다는 일부(노조가 확보된 대기업 원청 소속)의 ‘안정성’만을 추구했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적 발전 계획에 대해 숙고하지 않거나 각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질의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으며, N차 밴더와 사내하청의 이익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생산과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새 정규직 일자리는 희소하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많지만 청년과 여성은 대학 또는 취업을 계기로 지역을 떠나고, 이주노동자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만 고민되는 현 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울산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거주 인구 100만 명이라는 이른바 광역시 유지 기준을 6년쯤 후에는 충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노사정이 함께하는 경남권의 제조업 중심 메가시티를 주장한다. 서울-경기로 대표되는 (실행과 분리된) 구상, (실물과 유리된) 금융, (지역 전반을 하청화하는) 원청 ‘메가시티’의 대안으로 경남 권역(부울경+)을 묶어 내자는 주장인데, 맥락에 일부 수긍되면서도 일종의 ‘지역주의’ 느낌으로도 읽히긴 했다. 산업도시의 위기 극복이 지역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 전체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과 울산의 관계뿐만 아니라, 울산이 광주, 강원, 제주 등 ‘전국’과 맺는 관계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자립적 경제 구조 형성과 이 과정에서의 수많은 사회적 노동의 호혜적 창출이 이 점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소멸하는 대한민국’의 대안 출발점이 제조업인 것은 적절하지만, 그것이 소수 수출 산업에만 얽매일 수는 없고, 노동은 더욱 그렇게만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가 지향하는 ‘전 노동자의 중산층화’와 ‘산업 가부장제 극복’이라는 “꿈”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분야 연구자들이 실현 방안을 찾아내야 할 중요한 목표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희소하고 중요한 문제의식을 지닌 저자의 차기 연구 과제와 저술 방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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