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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h5627님의 서재
  •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수바드라 다스
  • 18,000원 (10%1,000)
  • 2024-06-07
  • : 8,518
_ 책의 원제는 Uncivilized: Ten Lies that Made the West로, 서구 현대 문명이 자신의 패권적 우월성을 위해 “문명”을 설정하고 “야만”(또는 비문명)을 규정한 역사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일종의 십계명’을 분야별로 제시하고, 그 속에 새겨진 제국주의적-자본주의적 편견을 비판한다. 비판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뤄진다. 사실상 서구 현대 문명은 거대한 성취 속에 부수적 오류들을 품고 발전해왔던 것이 아니라 무수한 희생과 억압 위에서 현실의 가능성을 협소화하며 특정 국가와 계급 그리고 분야만을 비대화시켜왔다는 것. 서구 문명이 가장 잘해온 것은 심지어 ‘물질적 발전’도 아니라 ‘현실을 눌러낸 브랜딩’이기에(하나 더 이야기한다면 “칼을 먼저 들었다는 것”),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알기 위해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며(85쪽), “모두가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 석상에 모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야말로 사실은 그 자체로 예술”(307쪽)이 된다.
_ 장별 글 구조는 ‘저자 경험 제시(도입)→여러 역사적 예시를 통한 개념의 허구성 폭로(본론)→주장 또는 개념의 재구성(마무리)’이다. 장별 글에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박력 있는 논지를 힘 있게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제시한다. 전반부의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는 쉽게 술술 읽히고(우생학, 흑인 토요학교, 잉카의 키푸, ‘고전’과 ‘대헌장’, 지정생존자 비판 등 좋은 이야기가 많다. 1~5장을 연결하여 읽어보면 저자의 논리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간’, ‘예술’, ‘죽음’은 조금 더 심오하게 논지를 확장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과거의 존재”로 타민족, 타계급, 타문명을 사유하는 것은 어쩌면 침략적 계몽주의의 ‘끝판왕’ 또는 ‘마지막 관문’일 텐데,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적 시간 관리 및 표준화’ 비판과 다른 문명의 시간 인식법(오세아니아인의 ‘드리밍’)이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며 깨트리고자 한다. 역사를 누적하며 살아온 인간 집단에게는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시간표와 시간관념이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사유는 “각자의 사회 제도, 발전 경로, 이익, 차이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국제 관계의 민주화”, “자주화”를 지향한다고 일컬어지는 최근 “다극 세계” 논리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일 수도 있을 것이다.
_ 저자 수바드라 다스는 인도계 영국인이다. 인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아랍에미리트의 영미권 학교에서 유년기에 공부하고 “서양 학교에 다니는 남아시아계 아이의 모범적인 소수자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라 우수한 성적으로 UCL에 입학해 학위를 받고 이후 계속해서 UCL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를 “내 삶과 교육 전부가 ‘서양과 나머지 세계’라는 이분법이 틀렸다는 증거”로 “나는 이 둘 모두”라고 확언하고 있다. 맥락상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신의 ‘뿌리’에 대한 탐구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난 듯하다. 여기에서도 여러 가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야기가 파생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주목했던 지점은, 저자가 그러한 사색의 결과로 ‘다문화적 영국인’보다는(또는 뿐만 아니라) ‘다극화 속 영국인’의 관점에서 ‘세계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_ 지금까지 ‘권력 게임’의 승자가 ‘문명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패자’가 이를 재구성하는 주역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누군가에겐 진부하다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지점은 변화 중인 현실이다. 책 속 이야기가 ‘글로벌 다수’의 실질적 진출과 “서구의 패배”와 맞물릴 때, 그것은 이미 찻잔을 훌쩍 벗어난 태풍에 관한 예보일 수 있다. 앞으로 수년, ‘일극에서 다극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를 여러 측면에서 조망하는 (또한 이를 외면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한국의 정계와 학계를 비판하는) 컨텐츠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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