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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서기 184년 후한 쇠퇴부터 280년 서진 통일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룬 역사서로 진수(촉한과 서진 시대 역사가)의 정사 삼국지(총 65권)와 명나라때 나관중이 저술한 역사소설 삼국지연의(1522년 명나라 가정제 때 간행, 청나라 때 모종강이 120회로 재편집한 모본이 현재까지 정본으로 인정)가 있다. 연의(演義)라는 제목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조선 왕실과 조정에서도 임진왜란(1592-1598) 전인 16세기 중반 ‘삼국지’를 활자로 찍어 유통시켰다. 1980년대 발견된 당시 활자본은 국내 최고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찍은 ‘삼국지연의’ 활자본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한성을 떠나, 6월 22일 평안북도 의주까지 피란을 떠났는데 아마도 삼국지를 미처 안 읽어본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군웅이 할거하던 삼국지의 등장 인물 가운데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조조의 군세에 패하여 후퇴하면서도 조조의 군사 수만 명 사이를 종회무진하면서 주군 유비의 아들을 구해낸 장판파 전투의 상산 조자룡,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일으켜 유비와 손권의 5만 연합군으로 조조의 80만 대군을 물리친 제갈공명, 사후에도 군신으로 추앙받는 관우라면 가능할까? 그런데 조자룡, 제갈공명, 관우는 주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 120일 동안 백의종군까지 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과는 처지가 달랐다. 삼국지의 재미에 빠졌다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을 잊어버릴 뻔했다.
* 제갈량의 읍참마속(泣斬馬謖)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촉한의 재상이 된 제갈량은 위나라를 공격하면서 중요한 가정 전투에서 마속이 자신이 내린 명령을 어기고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처형한다.
"재상…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다음번에는 결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대를 아낍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고 명령을 무시한 자를 용서한다면 앞으로 누가 명령을 따르겠습니까?"
그날, 마속은 처형되었고,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무덤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마속을 처형한 이유에 대해 제갈량은 조용히 답했습니다.
'군자지교담여수 소인지교감약례(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若醴)'
"진정한 관계란 감정으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법과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결국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 본문 84쪽-86쪽
*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꾸려면
오나라의 손권이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한 황조토벌전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적의 강력한 방진(여러 명이 밀집해 방어 대형을 만드는 전술적 진형)에 고전하면서 아무도 선뜻 돌파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있을 때 불량배 출신 감녕이 나선다.
"저 감녕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적진을 깨뜨리겠습니다. 단 20명만 주십시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한 번 입에 담은 말은 반드시 실천하겠습니다.
장내가 술러였습니다.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며 고개를 저었고, 누군가는 "허세일 뿐"이라며 웃음을 삼켰습니다.
"좋다. 맡겨보겠다. 너의 말, 기억하겠다."
전투가 끝난 뒤, 손권은 그를 불러 술잔을 직접 내리고 말했습니다.
"그대가 이렇게 말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소. 이제 이 강동의 중요한 일도 그대에게 맡길 수 있겠소.
"말 한 마디기 인생을 바꾸려면, 그 말이 진심이어야 하며,
그 진심은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言必行 行必果)
- 본문 239-240쪽
* 성패는 하늘에 달려있다
천문, 지리와 병법에 능통했던 조조는 화북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야망으로 80만 대군을 이끌고 강남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지만, 적벽대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나 지략을 가진 조조라도 하늘의 뜻까지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조조는 자연의 변수, 인간의 감정, 우연한 사건 같은 요소들이 항상 전쟁과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자연이 결정하는 운명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결국 조조는 패배를 인정하고 퇴각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본문 266-267쪽)
제갈량은 불로 공격하려 했으나, 때마침 큰비가 내려 이를 멈추었다.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일을 도모함은 사람에게 달렸으나, 성취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로다.”(亮欲以火攻,會大雨,遂止。亮歎曰:「謀事在人,成事在天,不可強也。)
- 사마광 『資治通鑑』 卷94, 三國·魏紀十四
정확한 출처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의 화공으로 패전하면서 하늘의 뜻을 알았고,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승리를 거둔 제갈량은 위나라의 사마의를 상방곡으로 유인해 불로 공격했지만 큰비를 만나면서 하늘의 뜻을 알게되었다. 하늘은 불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물로도 나타나 인간의 재주를 혼내주니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돌고 또 돌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결론은 진인사 대천명(盡人事聽天命)이다.
나는 덕과 힘을 가늠하지 못하고 조공(조조)와 겨루려 했다.(손권)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다.(제갈량)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밝다.(유비)
늙었다고 해도, 뜻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내 검은 살아있습니다.(황충)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 큰 뜻을 품고 멈추지 않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조조)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말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싸우지 말라는 말은 인간세상의 희로애락, 흥망성쇠가 한 작품 속에 망라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으면 싸움을 멈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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