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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님의 서재
  • 시인의 말, 시인의 얼굴
  • 윤동주.백석.이상
  • 16,650원 (10%920)
  • 2025-09-01
  • : 1,432

지식여행 출판사에서 나온 <시인의 말 시인의 얼굴>은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윤동주, 백석, 이상 시인의 산문필사집이다. 부록으로 세 시인의 시 3편씩도 실려있다.

일제강점기(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민족 수난기)에 태어나 백석 시인을 제외하고는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세 명의 시인들을 생각하니 먹먹한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은 1945년 2월 향년 27세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고, 이상 시인도1937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한 달 간 수감되었다가 폐결핵으로 향년 28세의 나이로 생을 달리하였다. 1912년에 태어나 1996년까지 살았던 백석 시인도 북한에서 축산 노동과 창작활동을 병행했지만 시 창작활동은 점차 중단되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암울한 시기에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들이 느꼈을 암담함은 결국 시인들의 운명을 재촉했으리라.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시인들이 남긴 시와 그들의 이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윤동주, 이상, 백석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 조용한 고백의 시작, 윤동주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쪽으로 훤-히 새벽이란 손님을 불러온다 하자. 하나 경망스럽게 그리 반가워할 것은 없다. 보아라, 가령 새벽이 왔다 하더라도 이 마을은 그대로 암담하고 나도 그대로 암담하고 하여서 너나 나나 이 가랑지길에서 주저주저 아니치 못할 존재들이 아니냐.

별똥 떨어진 데(1939년 창작 추정)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 수는 없다는 시인은 새벽이 왔다고 하더라도 이 마을은 그대로 암담하다고 하면서도,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날은 아니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서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면서 달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고 했던 시인은, 곧이어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지독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한 줄기 빛을 노래하는 윤동주 시인은 지금도 여전히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 풍경이 되고 사람으로 남는, 백석

오산학교 출신으로 민족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백석 시인은 '시인은 슬픈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이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백석의 시 <국수> 중에서

슬픔을 말하지 않고도 슬프고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오래 남는 백석 시인이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오래도록 시 창작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치열한 민중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익숙한 고독 익숙하지 않은 말들, 이상

윈도 안의 석고 무사는 수염이 없고 비너스는 분 안 바른 살결을 찾을 길 없고 그리고 그 장황한 자세에 단념이 없는 윈도 안의 석고다...

여름은 소름 끼치며 땀 흘린다. 어떻게 저렇게 겨울인 체 잘도 하는 복사빙판 위에 너희 인간들도 결국 알고 보면 인간모형인지 누가 아느냐.

산책의 가을(신동아, 1934년 10월호)

이상은 윤동주가 노래한 별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이 글을 보니 이상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이 2025년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고 할까? 아마도 '그들은 낮에도 밤에도 스마트폰을 본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지식여행 출판사의 <시인의 말 시인의 얼굴>은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백석, 이상의 필사하고 두고 두고 새기고 싶은 아름답고 눈부신 우리의 글들이 살아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백석 <국수> 중)

시대는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암울한 시대를 살다간 천재 시인들의 풍부한 어휘와 감수성은 마냥 그리웁다.

#시인의말시인의얼굴 #윤동주 #백석 #이상 #지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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