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중국 명나라 말기의 학자 홍자성이 저술한 채근담(菜根譚)은, 사람이 나물의 뿌리(菜根)를 씹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서 따온 제목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강탈당하고 먹을 것 마저 빼앗긴 우리 조상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목숨을 이어갔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맛집 탐방을 하면서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서서 기다리기를 즐기기까지 하는 현재의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서 풀뿌리와 나무껍질까지 벗겨먹어야 했던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세상살이를 상상하기가 불가능할정도이다.
채근담은 초판 형식의 명각본 222편과 후대에 전해진 후집 134편을 더해서 총 35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356편의 글을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운명과 시련을 대하는 자세,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마음을 비우는 공부, 세상을 비추는 눈, 자연과 하나 된 삶이라는 7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집중도를 높여준다.
* 오늘 내 마음의 날씨는(전집 6편)
- 거센 바람과 사나운 비가 몰아치면 새들도 슬픔에 젖고, 맑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풀과 나무도 기쁨에 찹니다. 하늘과 땅도 하루라도 온화한 기운이 없으면 안 되듯, 사람의 마음도 하루라도 기쁨의 기운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북 테라피스트 최영환 역)
疾風怒雨、禽鳥戚戚 ; 霽日光風、草木欣欣○
可見天地 不可一日無知氣、人心 不可一日無喜神○
전집 6편 원문
--- 하루를 살더라도, 온화한 마음과 작은 기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엮은이의 설명이 와 닿는다. 폭염과 폭우를 견디어내면서 하루 하루가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더우면 더운데로, 추우면 추운데로 움츠러드는 내 마음의 날씨. 기쁨의 기운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기쁨이 유혹할 때, 고통이 다가올 때(전집 10편)
인생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며, 진정한 성숙은 이 기대 밖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됩니다.
--- 기대 밖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다들 아프다.
* 지혜로운 사람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전집 51편)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한 가지 방식만을 고수해서는 안 됩니다. 바른 세상에서는 원칙을, 혼란한 시기에는 유연함을, 혼탁한 말세에는 두 가지를 조화롭게 써야 합니다.
---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을 써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아무래도 변칙.
* 탐욕은 가장 먼저 인간성을 허문다(전집 79편)
옛사람들은 '탐하지 않음'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살았습니다.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닌, 마음을 비우는 것이 곧 인격을 채우는 길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마음을 비우면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 끝내 탐욕을 비우지 못하는 마음.
* 절제의 선을 그리다(전집 84편)
통찰이 깊더라도 모든 것을 낱낱이 들춰 상처 주어서는 안 되며, 정직하다고 해서 융통성을 잃으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지나치게 짜지도 않은 음식이 진정한 맛을 품듯이 사람됨도 균형과 절제로 빚어져야 합니다.
---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의미는 아닌데, 가만히 있기도 힘드네.
* 하늘을 이기는 마음은 따로 있다(전집 91편)
외부의 조건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넘기느냐는 전적으로 내 안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 동양의 탈무드 채근담. 세상은 못 다스리지만, 내 마음은 다스려야겠다.
* 흐르는 감정, 멈추지 않는 마음(전집 125편)
슬픔이 오래 머물 것 같아도 곧 평안이 찾아오고, 기쁨이 영원할 것 같아도 그 너머에는 다시 고요함이 있습니다. 흐름을 막지 않고, 머무름을 바라지 않는 마음, 그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 현상은 머무르지 않고 변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에 자유가 깃들기를.
* 흐름 속에 나를 놓고, 집착을 내려놓다(후집 279편)
삶은 고정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지나친 동일시가 괴로움을 낳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흐르고, 사람 또한 그 안에서 바뀌어 갑니다.
--- 변치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어떻게 하나? 그 마음도 변할까?
* 태어나기 전, 사라진 뒤의 나를 묻는다(후집 319편)
본래의 '나'는 욕망이나 이름, 형상이 아닌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존재의 경계를 뛰어넘어, 삶 이전의 평온함으로 회귀하려는 사유. 이것이 곧 참된 고요이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은 초월의 문입니다.
---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나는?
* 모자람 속에 숨겨진 충만한 미덕(후집 355편)
차가 받드시 최고급이 아니어도 그 맛은 깊고, 술이 맑지 않아도 그 자리에는 온기가 깃듭니다. 삶에서 '형식'을 내려놓고 '의미'에 집중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여유이자 자유입니다. 완벽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불완전 속의 충만함을 아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고요와 교양을 빚습니다.
--- 모자람은 더자람이 아닐까. 완벽은 더 이상 못자람이고. 더자람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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