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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님의 서재
  • 네 통의 편지
  • 설흔
  • 12,600원 (10%700)
  • 2023-02-10
  • : 101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하느니라'라는 <논어>의 구절에서 배움에 다른 이름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움은, 사랑은, 삶은 배움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하는 마음을 가졌던 적이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 그런 시절이 있기는 있었던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운다는 설흔의 장편소설 <네 통의 편지>는 재미와 교양을 겸비했다. 교과서에서 이름을 익혔을 정도로만 퇴계 이황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엄격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따뜻한 스승의 모습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황은 제자들에게도 늘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평생 2,000편의 시와 3,000통의 편지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이황은 말년에 충실한 종 돌석과 제자 이함형만을 데리고 서당을 떠나 청량산 오가산당에서 공부에 목말라하는 네 통의 편지를 보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편지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대장장이 배순이었다. '무식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찾아온 대장장이에게, 이황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대로 평생을 살아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대장장이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처음 행보부터가 파격적이다. 당대의 내노라하는 명문가 자제들이 줄을 서서 제자가 되고자 하는데 대장장이를 제자로 받아들이다니. 말년의 퇴계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첫 날의 충격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두 번째 편지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제는 놀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이함형을 또 다시 난감하게 만든 주인공은 다름아닌 최의원의 딸 최난희였다.

'선생은 대장장이 배순에 이어 처자인 최난희까지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조선 천지의 어떤 스승도 행하기 어려운 일을 지금 선생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퇴계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주역을 읽으면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絕)이라는 고사를 남긴 공자에 못지 않았다. 주역을 읽다가 병까지 얻었고, <주자전서>를 읽으면서 어찌나 반복해서 읽었던지 글자가 희미해질 정도였지만, 새 판본을 구할 때마다 그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 진정으로 안다는 의미

"선생님, 이미 다 아는 내용을 그토록 반복해서 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글쎄, 그 책에 나오는 문장은 다 안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아는 걸 넘어서 내 일상 자체가 배운 대로 행해질 대 가능한 것이야.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느니라."

* 공부와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

"마음을 한결같이 지니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한 가지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전념하여 다른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도록 하거라."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이다.

이황은 제자 이함형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어려움을 꺼리지도 말며, 한 번 알지 못했다고 곧바로 포기하지도 말고, 그저 하던 걸 그대로 하면서 나아가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고생스럽게만 할 게 아니라, 때로는 한가하게 쉬면서 정서를 함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움도, 사랑도 일과 삶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어려움을 꺼리지도 말며, 한 번 알지 못했다고 곧바로 포기하지도 말고, 그저 하던 걸 그대로 하면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퇴계 이황 선생의 당부가 마음에 새겨진다.

퇴계 이황의 인생 공부법 <네 통의 편지>을 읽었으니, 다음에는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을 다룬 <붉은 까마귀>를 읽고 싶다. 두 권의 시리즈는 한자로 된 원서를 읽기 어려운 시대에 퇴계와 연암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런 유익한 시리즈가 계속 되기를 기대해본다.


#네통의편지 #설흔장편소설 #나무를심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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