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E-biz 개론 시간에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인만큼 기술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기술은 엔지니어가 해주는 일이고 경영학을 하는 사람의 관점은 그보다는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그 지점에 주목하라고 강조하셨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해주는 조언은 교수님의 조언과 똑같았다.
기술에 함몰되지 말고 고객과 시장을 바라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기술을 익히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이왕이면 그 기술을 직접 사용해보고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금상첨화이지만, 너무나도 깊숙이 빠져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위에서 말한 교수님도 코딩을 예전부터 할 줄 아셨다(라떼는 얘기하시면서 천공카드가 있었다는 둥 학교에 컴퓨터가 1대였다는 둥 잘 기억은 안나지만 무튼 라떼 얘기하시면서 기술 습득도 많이 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읽고 소화해봤지만, 실제로 코딩을 하거나 기술을 접하면서 익히는 것이 훨씬 더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기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팁들도 중요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열심히 쫓아다니라는 얘기의 변주다. 어떤 마법의 비기가 있는게 아니라 열심히 읽고 행사도 다녀보고 유튜브도 보고 토론도 해보면서 익히라는 것에 다름아니다. 실망스럽겠지만 흐름을 읽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다.
만약 돈이 엄청 많은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이라면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서 세미나를 열어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라고 하지만 이들 또한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지 않는가. 게다가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자기 방에 불러서 세미나를 열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더 발품을 파는 수밖에...
다만 이런 습관을 가지기 시작하면 좋은 점은 시간은 '복리'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기술은 한 순간에 갑자기 뿅 하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책 제목처럼 흐름에 따라 어떤 요구가 발생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하기 때문에 흐름을 읽는다는 건 그 기술의 역사를 아는 것이고, 역사를 알기 위해선 꽤나 오랫동안 관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관찰한 사람일수록 표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습관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메뉴얼이다.
밑줄긋기
p.32~33
키워드의 의미 이해도 중요하지만 해당 키워드가 산업, 기업, 사회, 사용자 중 어느 영역에 해당하며,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개념적 정의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p.34
콘퍼런스에서도 기술 자체보다 기술로 구현된 상품과 이것이 실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와 혜택을 주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p.34~35
내가 CES나 MWC 등을 여러 번 다녀보면서 얻게 된 팁이다.
첫 번째는 내부 전시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느 부스에 가장 많이 몰리고 어떤 제품과 기술 관람에 오랫동안 시간을 쓰는지 살펴본다. 이렇게 보다 보면 언론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화제가 된 부스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장에서 그런 곳을 알게 되었다면 호텔로 돌아와 해당 부스의 기업과 제품 등을 체크한 후 다음 날 실제 방문을 해본다. 그러면 먼 곳까지 가서 놓치는 포인트 없이 꼼꼼하게 관람하고 오는 게 된다.
두 번째는 행사 첫날과 마지막날 그리고 마지막 다음날, 행사장 주변의 식당과 10여명 이상의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 크기의 레스토랑에 혼자 머물며 식사를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귀동냥을 하는 게 핵심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 손님들이 말하는 키워드에 집중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이들이 술에 취해서 이야기하는 전시 속사정과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취중진담이라고 하지 않던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는 것은 무엇이며, 반대로 지금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등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실질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p.47
중요하게 봐야 할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자율주행의 보급 속도나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자율 주행이 되는 차 내에서 운전자는 어떤 경험을 하느냐이다. 이는 동시에 어떤 비즈니스 기회가 만들어질 것인지 고민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자율주행은 이제 시간문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언젠가는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과연 어떤 새로운 고객가치가 만들어질까? 이런 포인트에 주목해야 한다.
p.51~52
알파고 이후 기업 AI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관련 AI 기업에 대한 투자도 커졌습니다. 기업을 위한 AI 솔루션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은 단답형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다음처럼 바꾸어야 한다. 알파고로 AI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면서, 이렇게 사람보다 더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는 AI가 기업 현장에도 속속 적용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에서의 AI 도입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그간 어떤 성과가 있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또 그런 기업에 AI를 공급하는 Ai 솔루션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 정도 질문은 IT에 대한 식견이 없는 상태에서는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수준 높은 질문도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호기심을 갖고서 질문 만들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p.52~53
좋은 질문을 하려면 나는 어떤 답을 갖고 있는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내가 생각하는 답이 상식 수준이라면 그 이상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미리 고민해보게 된다. 메타버스가 앞으로 활성화된다면 AR과 VR 중 어떤 것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까요? 라는 질문은 우선 메타버스가 활성화되지 않은 경우는 배제하고 있는데, AR과 VR 두 가지 선택지만 물어보는 것이라 좋은 질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메타버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필수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조건이 달성되어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했을 때 AR과 VR이라는 서로 다른 기술은 어떻게 진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나요?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더 낫다.
p.94~95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큐커 오븐은 스마트싱스라는 앱을 이용해 구독 비즈니스를 운영한다. 삼성전자는 주요 식품업체들과 손잡고 밀키트 가정 간편식을 비스포크 큐커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제휴하고 관련 레시피를 앱으로 제공한다. 2년 사용 약정을 하게 되면 매월 3만 9천 원으로 간편식도 제공받고 오븐은 공짜로도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비즈니스 트렌드 역시 시기별 흐름이 있다. 이제는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진 상품으로 어떻게 돈을 버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팔아 돈을 받을지, 어떤 기술이 활용되는지 살피는 것이 기본적인 체크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