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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꽝 님의 서재
  • 작은 동네
  • 손보미
  • 12,600원 (10%700)
  • 2020-07-01
  • : 915

손보미의 <작은 동네>는 엄마가 꾸린 세계의 끝에 다다른 딸의 이야기다. '너의 삶, 너의 행복, 너의 안전'을 지키는 게 자신의 지상 과제라고 말하는 엄마 밑에서 주인공은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과보호를 받고 자란다. 무엇이 엄마로 하여금 그토록-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딸 걱정을 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는 늘 말하기보다 다물기를 택했고, 엄마의 침묵이 일군 세계 속에서 '나'는 어느 정도 엄마의 바람대로 자란 듯했다. 결혼까지 한 '나'를 보며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너의 인생이.'


그러나 죽음을 앞둔 엄마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 세계엔 서서히 균열이 인다. 엄마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건 말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나'가 열한 살 때 집을 나간 아빠까지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며 엄마의 장례식에 찾아오자 '나'는 무언가 감춰졌음을 직감한다.('나'는 아빠의 얘기를 듣길 거부한다. 아빠에 대한 괘씸함-'나'는 그런 감정 따위 남았을 리 없다고 부정하지만-이 직감을 앞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울리는, 말해지지 않은 사실들의 진동이 '나'가 발 딛고 선 세계의 지반을 집요하게 뒤흔든다. 물러졌던 기억들은 불시에 단단히 융기하고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이 한동안 함께 했던 "작은 동네"로 자꾸만 이끌려 들어간다.


작은 동네. 엄마의 말대로라면, 큰 화재가 났던 곳.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떠났지만 정착할 곳이 없어 돌아왔던 곳.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오빠가 죽었던 곳. '나'가 그곳에서 보낸 유년은 어쩐지 살풍경하다. '나'의 부모는 담장을 높이 쌓고 그들 가족을 동네로부터 고립시켰다. '나'는 무엇을 하든 엄마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어딜 가든 엄마의 손을 잡아야 했다. 자유와 모험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승인한 세계 안에 머물러야만 했다. '나'의 회상에서 부모는 '나'를 어떤 비밀로부터 철저히 제외시켜려는 공모자처럼 비친다.'나'는 불안하고 수상한 기운이 감도는 유년의 뜰을 샅샅이 뒤진다. 무엇인가 기어코 드러나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어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현재의 '나'는 과거를 곱씹는 동시에, 과거와 미묘하게 연결된 듯한 일들에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뻗는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기사 스크랩북을 강박적으로 뒤적거리고 남편이 일하는 연예 기획사 소속의 여배우(윤이소)가 갑자기 증발해버린 이유에 집착한다. 그런 '나'의 혼란스러운 행동들은 일종의 단서다. 윤이소는 '나'의 엄마가 작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관계를 맺은, 왕년에 유명 가수였으나 정치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일순에 무대에서 사라져 외딴 별장에 갇힌 여가수와 겹쳐진다. 윤이소가 사라진 이유를 여가수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 '나'의 기억이 '나'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을 스크랩북(의 바로 '그' 기사)가 폭로할 것이라는 예감을 독자는 갖게 된다.

지그재그의 진폭은 점점 줄어들어 단 한곳으로 이어진다. 바로 기억과 다른 사실말이다. 거기서 마침내 지금까지의 세계는 깨어진다. 엄마가 꾸린 세계는 엄마가 꾸민 세계가 되고, '나'의 발밑은 꺼져버린다. 이제껏 나의 '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 위로 줄을 그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딛고 서야 할까?


마지막 장면은 무너진 세계를 애도하는 것만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의 옆얼굴은 어딘지 두려운 데가 있다. 내가 아닌 먼 곳에 무심히 던져둔 시선은 엄마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나를 익숙하게 걱정하고 사랑하고 때론 미워하는 눈동자가 거기엔 없다. 대신 내게 말하지 않은 것과 영원히 말하지 않을 무언가만 어둡게 고여있다. 한 사람으로서 삶에서 내린 결단들과 그로부터의 회한은 엄마라는 호칭을 벗어난다. 그럴 때 엄마는 내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아 절망스럽다. 답해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무엇을 왜 말하지 않는 거냐고 갈급히 물어 엄마를 내가 알던 엄마로 되돌리고 싶어진다.


늘 더 모르는 쪽은 딸이라고 생각한다. 딸은 별 수없이 털어놓아야 경우에도 엄마는 원하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마침내는 먼저 죽음으로써 완전히 감출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엄마가 죽고 나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는 늦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죽은 엄마의 옆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볼 수밖엔 없는 것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묻거나 불러도 돌아볼 리 없다. 그러나 그 침묵과의 대결 끝에 '나'는 엄마와 '동등'하게 알게 되지만, 앎의 대가 또한 치러야 한다. 엄마가 일으켜 세운 세계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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