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을 위한 선물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도발적인 제목이다. ‘무신론자’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들에는 ‘신이 있는 것 같니?’라는 질문에 단순히 “어어? 음
글쎄 잘 모르겠어.“나 ”없는 것 같아“라고 대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개념에 어마어마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경멸과 불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널 위해 준비했어.’라며 내민 선물이 ‘종교’라면, 그들은 그것을 대단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제목을 “무신론자들도 누려봄직한 종교의 몇 가지 유용한 측면들과 그 활용법” 등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굳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고 지은 데는 사실 정말로 위의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 모욕하기 위해서라는 뜻이 아니라, 선물을 주고 싶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가 대성당들의 시대에서 벗어나며 겪은 모종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그 공허한 자리를 위로할 선물을 건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알랭 드 보통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의 핵심 내용, 즉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정말로 (저자의 의도대로) 그 선물에서 (격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메시지의
내용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주장은 책 전체에서 끊임없이, 분명하게 되풀이된다. 즉, 어떤
신의 존재를 믿는 일 없이, 특정 종교의 교리와 제도를 인정하고 따르는 일 없이도 종교가 오랜 세월
발견하고 쌓아 온 보물들을 얼마든지 현대인들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발견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보물들이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사회
제도 등으로 실현되는 데 성공한) 그 통찰의 활용법이다. 저자는
공동체, 친절, 비관주의 등에서부터 교육, 제도에 이르기까지 10가지 주제에서 종교가 활용해왔던, 그러나 지금의 세속 사회에서는 놓치고 있는 몇 가지 측면들을 재발굴하고, 그것을
이 사회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고자 하고 있다.
2. 메시지의
전달 방법
“이 책은 세속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적용되더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종교 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검토하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에서 보다 독단적인 측면을 제거함으로써, 골치 아픈
이 행성에서의 우리의 유한한 생애 동안에 가뜩이나 회의적인 현대인이 마주쳐야 하는 재난과 슬픔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측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으며 마치 한 권의 종교서, 종교 경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면 이상한 일일까?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작가가 세속 사회를 위해 쓴 책이 일면 성경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인상을 받게 되었을까?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아야 하는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한 진단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지향점을 제시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따른 이 책의 서술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인상을 받게 된 까닭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속 사회에서 인간 존재는 소외되어 있으며 외롭고 불안하고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런데 세속 사회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참혹한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련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개선이 필요하며 (책에서 제시된)이런 방법을 통해 실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 존재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린 뒤, 기존 상태에서는 극복 불가능하다고 겁을 주고는, 돌연 인간은 보호받아야 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와 같으므로 이러저러한 방법을 통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서술 방식은 기독교 교리 등에서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효과가 증명된) 고전적인 구도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인 충동을 이겨내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다급한 필요성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종교가 성취한 엄청난 일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 구조의 형성 방법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음을 제시한다.
3. 평가
위에서는 저자가 다소 극단적으로(?) 인간 존재와 사회를 정의한 것처럼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알랭
드 보통은 상당히 절묘하게 인간과 사회를 파악하고, 이를 언어화하였다.
때론 과감하게, 때론 섬세하게 포착해 낸 세계의 특성들은 이 책의 설득력을 높여 준다. 인간의 잘 잊어버리는 특성,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감탄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하찮음을 통감하는 존재임 등을 두루 살피고 재조명한 것은 상당히 탁월한 성취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알랭 드 보통이 선물을 건네는 대상이
다소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저자가 파악한 ‘인간 존재’가 실제의 인간 전체를
잘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무신론자들’을 위한, 충분히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의 대상은 ‘세속 사회의 인간’을 칭하는 ‘무신론자들’조차도
충분히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우선, 저자가 상정한 인간은
상당한 정도로 합리적이고, 공동체의 유지나 자애로움 등의 일반적 윤리 가치에 동의하는, 그리고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꽤
포용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이보다 훨씬 덜 참을성이 있거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종교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초월하는 어떤 상징이며, 또한 우리의 하찮음에 대한 인식을 이용한
교육이다.”라고
분명 말하면서도, 정작 그 초월적인 어떤 것, 일상적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종교적인 특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직접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하찮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발견한 자신의 부족함을 어떤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무언가와 비교하여 극단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을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표면적으로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두 번째와 연결된다. 즉,
‘종교’를 총체적으로 정당하게 규정하기보단, ‘종교’라는 것을 무신론자의 영역으로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해 종교 개념을 해체하여 (기능에만 집중하는 등) 유용한 것들만 취사선택하여 바라본 것이다. 이런 편리한 방식은 종교의
핵심 존재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즉, 여러 학자들이 ‘종교’를
정의할 때 놓치지 않았던 지점인, 초월적인 것, 성스러움에 대한 지향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신론자를 포함한) 인간이 종교적인 지향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이들은 알랭 드 보통이 마련한 선물이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4. 마무리
이를 종합하여 보면, 알랭 드 보통은 세속 사회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인간 존재를 구출하기 위해
‘종교’가 과거에 이미 발견했던 훌륭한 가치와 제도들을 재조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훌륭한 방법들, 즉 예술과 과학에 의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애써
마련한 이 ‘선물’은 안타깝게도 ‘모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사라진 빈 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완전히 채워 넣으려는 저자의 시도는 종교가
인간에게 주는 대체불가능한 위안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일부의 성공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귀중한 것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종교와 세속 사회 간의 화해를 시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시도는 그 자체로 배울 점이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할 만하다.
‘임의의’라는 낱말이 가진 보편성의 의미와 비교할 수 있는, 특수한 무엇을 가리키는 의미에서의 ‘어떤’을 사용하였다.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 12면.
같은 책, 20면.
같은 책, 25면.
같은 책, 214면.
같은 책, 245면.
같은 책, 13면.
같은 책, 215면.
유요한, <<종교, 상징, 인간>>, 21세기북스,
2014, 36~40면.
같은 책, 55~57면.
합리적, 지성적이고, 종교를
믿지는 않으나 종교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스러운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이 없는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