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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 건강 매뉴얼
  • 제니퍼 건터
  • 23,400원 (10%1,300)
  • 2022-03-08
  • : 196

대한민국 여성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신과와 산부인과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개선되고 있으나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는 '산부인과'의 명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産)'은 출산을 의미하고, '부인(婦人)'은 결혼한 여자를 의미한다. 즉 산부인과를 글자대로 해석하면 '결혼한 여자가 출산하는 과'이며, 실제 진료와는 다르게 의미가 왜곡되는 것이다(그렇기에 이번 대선 후보 중 산부인과의 명칭을 여성의학과로 정정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내 기억 속 중·고등학교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야 했던 성교육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여성의 성기, 성욕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는 것보다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 성폭력에 대한 교육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성(姓) 교육은 남성과 관련된 성과 관련된 지식을 배우는 게 중심이었던 것이다. 여성의 정신적 · 신체적 건강에 대해 알아가려면 따로 정보를 수집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초경을 하면 그때부터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조차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남성중심주의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여성의 성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터부시된다. 더 나아가 여성의 건강 문제를 공개적인 곳에서는 논의하기도 어려운데, 자궁 혹은 난소 쪽에 문제가 생겼을 시 정보를 수집하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익명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극히 드물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많은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시 '굴욕 의자'에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는 것 때문에 진료를 꺼려 하는 여성들도 많다. 나도 어릴 때부터 난소에 기형혹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산부인과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려고 해도 원인은 모른다는 글을 많이 읽었고, 내 지인들에게도 이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을 권유하게 되었다. 생리 주기가 일정하고 생리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병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이를 실감하게 된 것은 내 경험을 공유했을 때 자기도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나 난소에 혹이 있다고 말했던 지인을 마주했을 때였다.

그러던 중 글항아리 사이언스 출판사에서 질 건강 매뉴얼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인 제니퍼 건터는 30년 넘게 질 · 외음 전문가로 활동해온 산부인과 전문의로, 다양한 부인과 질환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통증의학, 피부과학, 물리치료와 재활의학까지 섭렵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산아를 출산하며 양질의 의학 정보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고, 거짓 정보와 싸우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거침없는 부인과의사'인 그의 성격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문장은 여성의 질을 본떠 디자인한 겉표지를 펼쳤을 때였다. '너무 젖었다, 너무 메말랐다, 너무 역겹다, 너무 헐렁하다, 너무 조인다, 피투성이다 혹은 냄새가 고약하다. 이런 말을 들어본 모든 여성에게,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이 부분을 다른 SNS에 올렸을 때, 어떤 이는 정말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글을 썼다. 아마 믿을 수 없어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실제로 정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는 여성들도 굉장히 많다. 존중받고 함께 알아가야 할 여성의 성 문제는 남성의 중심에서 쉽게 대상화되고 평가된다. 첫 페이지에 있는 말처럼, 제니퍼 건터는 생식기의 순결과 청결에 대한 집착을 꼬집으며 책에 의료계에서 종사하며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질과 외음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들어가며' 부분의 마지막 문장이 가장 강렬했다. 한 여성이 무언가를 '끝장내기 위해' 다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응원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목적 대상과 행동의 연유가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각 매체에서 활동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을 연유를 한눈에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여성의 생식기 구조, 관리, 월경, 폐경, 약물과 시술, 성 매개 감염, 질환, 증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는데, 제니퍼 건터가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한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책의 분량은 매뉴얼이라는 제목처럼 523쪽이다. 그렇기에 일독해도 좋고, 발췌독해도 좋다. 사전처럼 어느 부분을 읽어도 이해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나라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이 감수했다. 미국의 산부인과와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료제도와 의료 환경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윤정원은 이 책을 감수하며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 맞게 참고할 만한 내용을 추가하며 그 간격을 좁히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 글항아리 사이언스 출판사에서 질 건강 매뉴얼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인 제니퍼 건터는 30년 넘게 질 · 외음 전문가로 활동해온 산부인과 전문의로, 다양한 부인과 질환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통증의학, 피부과학, 물리치료와 재활의학까지 섭렵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산아를 출산하며 양질의 의학 정보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고, 거짓 정보와 싸우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거침없는 부인과의사'인 그의 성격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문장은 여성의 질을 본떠 디자인한 겉표지를 펼쳤을 때였다. '너무 젖었다, 너무 메말랐다, 너무 역겹다, 너무 헐렁하다, 너무 조인다, 피투성이다 혹은 냄새가 고약하다. 이런 말을 들어본 모든 여성에게,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이 부분을 다른 SNS에 올렸을 때, 어떤 이는 정말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글을 썼다. 아마 믿을 수 없어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실제로 정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는 여성들도 굉장히 많다. 존중받고 함께 알아가야 할 여성의 성 문제는 남성의 중심에서 쉽게 대상화되고 평가된다. 첫 페이지에 있는 말처럼, 제니퍼 건터는 이 책에서 내내 생식기의 순결과 청결에 대한 집착을 꼬집는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너무나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의 성을 터부시했다는 사실에 책을 읽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장점은 바로 '꼭 알아두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요점만 짚어주는 부분이 따로 있다. 아무래도 정보를 담고 있는 설명문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메모를 따로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을 보며 여러 부분을 신경 써서 작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각 기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생식기에 대한 여성 혐오적인 시각까지 다시 꼬집는 부분 역시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은 한번 언급이 된다 하더라도 다시 쉽게 지나칠 수도 있다. 몇백 년 동안 뿌리 깊게 내려온 여성 혐오적인 시각은 쉽게 바뀌지 않고,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배경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또한 그러한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들은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 번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한번 더 말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외음 세정'에 대한 부분이었다. 얼마 전 SNS에서 외음부는 뜨거운 물로 절대 씻으면 안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외음부는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출처를 알 수 없어 찝찝해하던 참이었다. 이 책에서는 외음은 세정을 하더라도 의학적으로 약간의 세정이면 충분하며, 여성들이 외음을 씻는 주된 이유는 냄새 방지와 '청결한 느낌'을 위해서라고 서술했다. 여성 세정이라는 개념은 적어도 수 세기 동안 여성의 정상적인 생식기와 분비물을 '더러운 것'으로 치부한 남성 지배적 사회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기억하라는 보충 설명과 함께. 여성 세정제 산업도 이것을 부추겼다는 사실 역시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정상적인 자기 신체를 더럽다고 느끼고 '여성스러운 산뜻함'이 '자신감, 편안함, 청결함'이라고 여기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시각이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이런 사회의 영향을 토대로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뼈 저리게 느꼈다.


[질 건강 매뉴얼]은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만큼 질과 외음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고, 잘못 알려진 상식에 대해 바로잡고자 하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들은 적이 있는 여성에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사전처럼 집에 구비하고 필요할 때마다 읽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나의 생식기에 대해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제니퍼 건퍼의 말처럼 여성이 자신의 생식기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은 전혀 손해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성교육으로도 좋다고 느꼈는데, 여성이 생식기로 느낄 수 있는 쾌락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알고 더 잘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책과 관련은 없는 이야기이지만, 앞서 언급한 나와 내 주변이 경험했다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나 난소 혹에 대한 정보는 이 책에 없다. 아무래도 이 책은 질과 외음에 집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제니퍼 건터처럼 세계의 어딘가에서 이 부분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결과를 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의료인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몸에 대해 스스로 알 수 없고 완전한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은 가끔은 아주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아직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없고, 어쩌면 적합한 데이터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그런 병이 발병하는 원인과 예방법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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