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 20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5권 ❙지은이 : 박경리❙펴낸 곳 : 다산책방
<책소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한국 장편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한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다. 우리 민족이 가장 참혹했던 시기에 겪었던 상처들을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침내 만세!
<인과응보>
착한 일에는 좋은 결과가, 악한 일에는 나쁜 결과가 응당 돌아온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이자 카르마, 곧 업(業)의 섭리다. 내가 아는 어떤 어머니는 자신의 행동이 훗날 아이에게 불운으로 돌아갈까 봐, 절대로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험하거나 독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식을 위해서 조금 손해 보는 쪽을 택한다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다짐처럼 보이지만, 자기의 삶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지혜이자 윤리의식이다. 이 삶의 자세는 《토지 20》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20》권은 이러한 업의 굴레와 인간 삶의 섭리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한복이 며느리에게 악행을 하면 자손들한테 안 좋다는 얘기, 그거는 빈말이 아니더구마. 악한 일에는 나쁜 결과가 응당 돌아온다."라는 목소리는 그냥 미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여러 인물을 통해 개인이 저지른 악행과 폭력,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당대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 자손의 삶에까지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며 결국 자기 자신과 후대를 파멸로 이끄는 업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악마는 누구인가." "그들의 역사는 거짓으로 반죽한 생명 없는 토우다." 진실을 왜곡하고 생명을 도륙하는 일본 제국주의 또한 ‘인과응보’의 틀 안에서 보면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말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한민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작가는 남희가 아이를 떨어트리는 사건을 넣는다. ‘아기의 부러진 팔은 붙여 놓고 기다리면 회복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기다림의 끝에는 해방이 있다.’라는 암시로 읽힌다.
<어둠의 사슬 속에서>
삶이 지속되고 해방을 맞이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선의와 용서, 인간애 그리고 연대 의식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 "빛이라고는 한 줄기 찾아볼 수 없는 캄캄한 밤과도 같았던 그 시절." "사방은 갈 곳 없는 절벽"과 같았고, 민중의 삶은 절망 그 자체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온정과 감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옛적부터 성님 맘은 넓고 공평했제요.“ 지독했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뚤어지고 이지러진 인간 본성들은 서로를 받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남을 돕고자 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 줄 것이 있으니 고맙고 줄 동무가 있으니 얼마나 좋노……."라는 한복의 말에도 알 수 있다.
또한, 절망의 순간에도 인간애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거 희한하구마. 일본사람이 자네를 구해주었다 그 말인가?"라는 몽치의 말과, "선생님, 죽지 말고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상의의 간절한 염원은 악랄했던 일본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토지 20》에서는 여러 인물을 통해 미움과 저주의 연쇄를 끊어내는 진정한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제시한다. "내 마음속에는 저주와 미움밖에 없어!"라며 괴로움에 울부짖던 두수는 자신만의 지옥 속에서 악이 악인 줄 모르고 살아간다. 환국은 "그런데 그는 나를 용서했다."라는 고백을 통해 자기 잘못을 아프게 뉘우친다. 명희가 "조찬하 씨를 만났어요." "용서해달라고 빌었어요."라며 고개 숙이는 장면은 타인을 향한 악행은 자신을 갉아먹지만, 진심 어린 참회와 용서는 어두운 업보를 타파하는 빛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제의 압제가 가혹해지고, "공부를 한다기 보다 학교는 병영과 같은 곳이었다." "식량이야말로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할 수 있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최악의 순간을 건너 민중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마침내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라는 끝맺음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각자의 지옥에서 서로를 건져 줌으로써 지켜낸 삶과 이뤄낸 독립이다. 토지에서는 거짓과 악행을 일삼아 역사를 더럽힌 자들은 결국 안 좋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악이 악인 줄 아는 것은 배움의 깊이도 신분의 높이도 소용없다. 그것을 경계하며 살아낸 민중이 있었기에 마침내 독립이라는 위대한 결실을 맞이할 수 있었다. 《토지 20》은 선의와 용서, 인간애와 연대 의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해방’을 통해 보여준다.


✪이 글은 실비아님과 채성모님을 통해 다산북스에서 책을 받아 쓴 서평입니다.
그에게서 청백리의 자손으로 오기에 가득 차 있던 지난날 그 미소년 이상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에 일본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다 있나? 하 참." 한복은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