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기도의 언어 ❙ 장피에르 프레보스트 ❙ 가톨릭 출판사

말이 막힌 자리에서 시작되는 기도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시편 22,3)
아이는 어릴 적부터 자주 밤을 건너야 했다. 숨이 갑자기 가빠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우리는 예고 없는 밤길을 달려 병원으로 향하곤 했다. 10 대가 된 지금도 그런 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는 많이 자랐지만, 호흡을 가늠하며 보내는 시간의 긴장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앞에서 기도는 늘 막혔다. 간절함은 분명했지만, 말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편, 기도의 언어』는 바로 그 말 잃은 자리에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기도를 잘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기도가 왜 자주 부서지는지를 먼저 묻는다. 내가 만난 시편의 언어는 ‘부르짖음’이다. 시편의 기도는 정돈된 고백이나 안정된 찬미가 아니다. 오히려 삶이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가깝다.
시편의 화자들은 분노하고 항변하며 때로는 하느님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언어가 기도로 남는 이유는 말의 완결성보다 방향 때문이다. 부르짖음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있다.
아이의 호흡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떠올린 기도는 문장이 되지 못했고, 같은 말이 반복되다 끊어지기를 거듭했다. 『시편, 기도의 언어』를 읽으며 그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부르짖음이란 의미가 완성된 언어가 아니다. 그 침묵의 시간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으려는 몸의 반응이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신앙의 성숙함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시편이 보여 주는 성숙함은 안정이 아니라 지속이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도 말을 멈추지 않는 태도 말이다.
저자는 부르짖음을 신앙의 결핍이 아니라,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로 읽는다. 고통과 두려움의 한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향해 있다는 사실, 그것 만으로 기도는 이미 시작된다.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위로의 문장으로 소비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시편을, 고통 속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언어로 다시 세운다. 기도는 마음이 정리된 뒤에야 가능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가장 어지러울 때 남는 마지막 언어일지도 모른다. 시편이 언제나 답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을 멈추지 않게 한다. 그 점에서 시편은 여전히, 가장 인간적인 기도의 언어로 남아 있다.

*가톨릭 출판사 캐스리더스 8기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