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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러빗의 책 읽기
  • [큰글자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25,000원 (250)
  • 2020-03-25
  • : 204





책 읽기에 앞서 차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차별이란 사전적 의미로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을 말한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수많은 분류기준과 범주에 따라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이 다중성을 생각해야 비로소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준이야 어떻든 차이를 두어 구별로 끝나는 것이 차별이라면 차별금지를 위해 애쓸 필요가 있을까? 차별이 과연 불이익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저자는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 때도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차별에 대하며 다양한 연구결과와 사례를 통해 차별과 평등을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던진 비하성 유머에 “왜 웃긴가?” “누가 웃는가?” 라는 질문에

”누가 웃지 않는가?“ 로 답하여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를 거부하는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목격하는 차별 ‘내국인 전용’,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 어떤 손님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해도 된다고 해서 어떤 손님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특정 ‘집단’을 거부해도 괜찮은 것일까?(...) 어떤 외국인 누군가가, 어떤 아동․청소년 누군가가, 어떤 장애인 누군가가 문제가 있었다고, 그 집단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누구를 거부하는가?“라는 것이다. (...) ‘진상’ 손님이 성인 남성이라면 과연 ‘성인 남성 금지’라는 표지판을 내세울까? 이런 ‘진상’ 손님이 인근의 대기업 직원이라면 어떨까? ‘○○기업 금지’라며 모든 사원의 입장을 거부할까? 123p

미국의 긴 인종분리의 역사도 이 거부에서 시작되었다. 124p

인종 분리는 분명 ‘백인’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었다. 125p

저자 김지혜 교수는 혐오 표현 관련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토론회에는 장애인들도 많이 참석해 있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이 말을 왜 사용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왜 사용했을까?” 이 표현에 상처받았을 사람들이 있을텐데...

무심결에 하는 많은 말속에 차별과 비하의 의미가 존재한다. “여자치고 잘하네” “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라는 말들은 칭찬이나 격려의 말로 발신하지만 듣는 수신자에게는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잔혹’하게 들릴 수 있다. 책에는 이러한 구조화된 차별의 여러 사례가 소개되어 있고, 이러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자세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담고 있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차별이 존재하고 누군가 차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차별과 혐오를 들여다본다. 우리가 얼마나 차별을 보지 못하는지,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어떻게 '정당한 차별'로 위장되는지를 알려 준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고정관념으로 인한 차별은 없는가?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일찍이 교육 기관에 던져진 아이 때부터 무리 짓는 법과, 편을 가르고 차별하는 법을 알게 된다. 목격하고 겪었으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다수에 의한 소수의 차별을 집단이나 공동체 속에서 종종 보게 된다.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수의 무리에 들기 위해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서 차별하기도 한다.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어울림의 공포’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모르고 하는 차별, 알면서도 하는 차별, 두려워서 하는 차별 등 복잡다단한 차별의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어울림의 공포와 싸우는 한 가지 방법으로 최소한 배척당할까 두려워서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라고 전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저지르기도 한다. 혐오 발언에 있어서 발신자의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라는 답변이 수신자에게 ‘차별하지 않았다’가 될 수 있을까? 발신자와 수신자의 간극이 클 때를 이야기한다. 이런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평소 무의식중에 해왔던 말과 행동은 무엇이 있는가? 차별받는 사람들조차 차별 구조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범용화된 차별 중에 구조적 차별과 내제된 차별 등 차별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차별인 줄 모르는 사람들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에 대해서도 짚어준다.

지금 우리는 능력에 따라서 차별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에 살고 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한가?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지는 특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워런 버핏은 ‘스타터 키드, 난소 복권’을 이야기했다. 권력 세습은 반대하고 자본 세습은 가능한 이 사회에서 과연 능력으로 평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입장이 바뀌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2016년 6월 어느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의 지하철 1호선에서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가 있기 약 8개월 전인 2017년 10월 한 쟁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신길역 계단 옆에 설치된 장애인리프트를 타려다가 계단 아래로 추락하여 결국 사망한 사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매 정거장에서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6개 정거장을 가는 데 1시간 40분이 걸렸다. 평소보다 5배 이상 걸린 것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번 시위 뉴스 영상 댓글란에 “왜 출근을 방해하는가? 과격 시위다.” 등 여러 비난 댓글이 달렸다.

아이가 아팠다. 여러 날 동네 소아과에 갔지만 차도가 없다. 지역 대학 병원에 갔다. 나아지지 않아서 S병원에 예약했다. 큰 병원일수록 원하는 날짜나 시간에 예약할 수 없다. 오래 아팠다는 얘기에 빈자리가 있다며 급하게 잡아준 예약일. 예약 시간이 문제였다. 오전 8시 20분. 진료 시간에 맞춰 가려면 2시간 반 전에 출발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지하철 타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지옥을 경험하게 할 줄이야. 한참 아이가 잠들어 있을 시간.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눕히고 필요한 물품을 실었다. 무게로 유모차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당신은 지하철이 지옥철이 되는 시간을 아는가?

서둘러야 했다. 지옥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연착되었고 지옥철 시간에 맞물려 탑승했다. 뒤에서 미는 바람에 순식간에 아이와 떨어졌다. ‘여기가 지옥이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누군가 아이를 안아 올려서 내쪽으로 내려주었다. 그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신이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용하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두려움을 안고 매일 출퇴근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 속에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10시! 만 되었어도 아이와 나는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시위가 10시 이루어졌다. 출근을 방해했다고? 과격 시위라고? 나와 내 가족이 이동하다 추락해서 사망할 수 있다면?

우리가 투쟁으로 얻어낸 자유 중에 좋게 소통하여 이루어진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156p

서로 해치려는 갈등이 심한 현 사회에서 범용화된 차별은 들여다보기 힘들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에 ‘동성애 독재 공포’를 상상하며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두려워한다. 난민들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는 예측하는 시대가 아니라 대응하는 시대다.” - 김난도 <삼프로 tv>

차별을 공포로만 예측하기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최소한의 의무로 생각하고 대응하면 어떨까?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르다, 맞다 틀리다’라는 논쟁은 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계속 싸울 것인가? 대응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지난날 노예제도, 여성참정권, 인종 분리를 이야기할 때도 다수가 미래를 두려워하여 유혈사태까지 이르렀었다. 어떤 의견이든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응하는 건 어떨까?

차별 앞에서 소극적 대응일지라도 “누가 웃지 않는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최재천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양심》이라는 책을 내며 기자들 앞에서 “공정이란 공평 플러스 양심이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양심의 불 앞에서 건널 것인가? 건너지 않을 것인가?

#선량한차별주의자 #창비 #김지혜 #차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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