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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달리 멍멍타로
  • 은소홀
  • 12,150원 (10%670)
  • 2026-07-16
  • : 3,790

 좋은 작품이란 뭘까. 글의 울림에 반응한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참 감사한 일일 것 같다.


 여기서 글을 쓰려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는 이미 단단히 반응해 버린 것 같다.




1. 나의 20년 전으로 - 나는 그때 그 개를 보며 왜 울었을까


 이 책을 다 읽어갈 무렵, 20년 전쯤 봤던 일본 영화 <우리 개 이야기(2005)>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개를 키우지 않았고, 개와 특별한 추억이나 교감을 나눈 적도 없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울렁이는 것이 이상했다. 개와 사람이 나오는 평범한 이야기에 펑펑 울다니.


 그때 나는 그 이야기를 보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남달리 멍멍타로』를 읽게 되면서 그때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건 사랑이었다.




2. 사랑한다고 해서,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일까


 이 책은 개와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소재가 꽤 독특하다. 작가는 달리네 여인들에게 신비한 능력을 부여하고, 논쟁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복제견을 소재로 삼았다.


 그런데도 왜 이 소재가 걸림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작가는 흔히 말하는 '어그로 끄는' 방향으로 흐름을 틀지 않았다. 이 사회의 갖가지 불편한 문제들을 작품 위에 덕지덕지 붙이지 않았고,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삐끗했다면, 아, 정말 위험했다.


 이 책은 사랑을 마냥 따뜻하고 아름답게만 포장하지 않았다. 달리와 제인을 보면서는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때가 생각났고,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지금의 내가 보였다. 돌이켜보면 나를 둘러싼 사랑도 늘 부드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은 채 스스로에게 갇히는 달리의 모습을 보며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들어줄 여유도 없는 불안 속에서 오히려 귀를 닫아버림으로써 침착한 척하는 그 역설적인 행동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런 달리에게 타로카드가 건네는 위로도 인상 깊었다. 카드는 단순히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달리가 스스로 외면하고 있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제인일 때도 마찬가지다. 달리에게는 제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달리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마음도 이해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모른 척을 할 수가 있겠는가. 나 역시 가까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심지어 내 아내는 조금만 기분이 달라져도 전부 티가 나는 사람이다.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했고, 들어줘야 했고, 그렇게 굳어가는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줘야 했던 순간들이 문득 생각났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 아이들을 바라보는 건 마음 아프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가 이해되기도 했다. 나 역시 아이 모르게 아이를 위한다며 무언가를 숨기거나 바꾼 적이 여럿 있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 부부는 둘만의 작전을 종종 수행하곤 하는데, 그게 여기서 떠오를 줄이야.


 결국 시작은 모두 같은 사랑인데,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다르다. 그래서 누구 하나를 쉽게 탓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참, 사랑이라는 게 단순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대의 마음은 들으려 하지 않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면서도 그것을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는 게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남달리 멍멍타로』가 다루는 '복제견'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도 결국 이 지점에서 다시 다가온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너무나 이해된다. 나라도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바라는 건 그 존재가 다시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존재를 잃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붙잡아두고 싶은 것인지.


 이기적인 나는 아마도 후자였던 것 같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사랑도,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붙잡아두려는 마음으로 바뀌는지도 모른다.




3. 읽고 난 다음 날, 아들과 함께 영화 <컨택트>를 보다


 책을 다 읽고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바로 그다음 날,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티니핑 영화를 보러 떠나버렸다. 집에 남겨진 나와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은 영화 <컨택트(2016)>를 보기로 했다. (*어릴 적에 본 <콘택트(1997)>의 리메이크작인 줄 알고 골랐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외계인과 소통하는 영화를 보는데, 전날 읽었던 『남달리 멍멍타로』가 생각나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비슷한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영화를 계속 보고 있으니, 왜 이 책이 떠올랐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잠시 스포)


 <컨택트>에서 주인공인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알게 된다. 사랑하게 될 사람과의 만남도, 그 사랑이 가져올 행복도, 그리고 결국 찾아올 너무나 아픈 이별까지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끝을 알고 있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루이스는 그 삶을 다시 선택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전날 『남달리 멍멍타로』를 읽으며 품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래도 그 사랑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한다. 나 역시 복제가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컨택트> 속 루이스의 선택은 그 반대였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알고 있음에도 그 이별을 처음부터 없애는 대신, 그 사랑이 존재했던 삶 자체를 선택했다.


 인간의 삶도, 동물의 삶도 결국 유한하다. 사랑한다는 건 잃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언젠가 잃게 될 걸 알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을 견뎌야 한다.


 나는 이런 영화와 책을 이틀 사이에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것도 아들과 함께여서 더더욱. 아들은 영화가 끝나자 그냥 '재밌었다'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 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4. 다시, 20년 전으로


 『남달리 멍멍타로』를 덮고 나니, 이 책은 내게 그저 개에 관한 이야기로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때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붙잡으려 하는 평범한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시 20년 전의 <우리 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그때의 나는 개를 키워본 적도 없었고, 개와 어떤 추억을 나눈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슬펐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그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사람이었나 보다.


 돌이켜보니, 20년 전 그날 흘렸던 영문 모를 눈물과 지금 이 책을 덮으며 품은 생각이 비로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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