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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 19,800원 (10%1,100)
  • 2024-05-21
  • : 26,329

정치학 책은 사실 나와는 먼 것처럼 느껴졌다. 10여 년 전 '나꼼수'라는 걸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던 시절과, 얼마 후 그게 정말 꼭 옳은 것만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시절이 내게도 한때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으로, 회사에선 가장 열심히 일할 직급에서 분투하고 있기에 정치까지 신경 쓸 겨를이란 (다 핑계지만..)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처음 방문한 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집었고, 결과적으로 내 무심함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리뷰 대회에 응모하려고 책을 읽은 건 아니었는데, 결국 나 자신의 침묵이 더 무서워지는 걸 느껴 이 글을 남긴다.


이 책은 미국의 선거제도와 정당 구조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의 목소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놀라웠던 건 이 모든 일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절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는데, 무력, 억압, 독재가 아닌 투표와 입법, 그리고 절차와 제도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을 거치며 조금씩 마모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어 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질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법을 지키는데도 무너지는 체제, 절차를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침묵의 쿠데타. 이 아이러니한 역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과 맞물리며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끝내 탄핵됐다. 이렇듯 정치권력은 전세계에서 점점 더 비상상황을 호소하며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너무나 확실한 증거를 남겨 준 저들에게 역으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참 씁쓸하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고자 한다. 무언가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침묵이 쌓이고 굳어지면 우리는 어느새 ‘합법이라는 얼굴을 쓴 침묵’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종국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책에선 여백으로 남겨두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행동을 촉구하지 않는 대신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묻고 있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또, 무엇을 침묵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뉴스를 틀다 말고 예능으로 돌리던 순간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넘어갔던 정책 이슈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정치까지 생각하는 건 힘들다고 외면했던 나의 모습이 과연 옳게 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학 책이 아니라 ‘거울’ 같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계,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거울 말이다. 아이들과 내가 살아갈 세상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아프고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 셈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쩌면 정말 고마운 책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독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조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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