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들 때면 늘 엄마를 괴롭혔었다.
오래 전, 부모님이 내 목표를 지지해주지 않았던 그 장면으로 돌아가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음에도 어쩌면 가장 편한 방어 기제 중 하나였다.
그러면 나는 이내 편해졌다.
당분간은 간섭 받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제 딴에는 엄마를 손쉽게 물리친 셈이었고, 다시 똑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일상이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만을 채우는 일이었고, 생활 패턴은 모두 집 안에서 이루어 졌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 가한 상처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나의 우울함과 좌절감,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보는 괴로움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오래 전 그날로 돌아가 부모님이 내 목표와 선택을 지지해 줬다면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그토록 좋아하고 동경하던 훌륭한 스포츠 선수가 되어 있었을까?
수많은 세월이 지나 이제야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사람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나.
돌아보면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벗어나기 힘든 상황을 마주쳤을 때마다 나를 힘들 게 했던 원인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서가 아닌 외부적 요인만을 끌어내 극복하려 노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그건 극복이 아니었고, 노력도 아니었다.
나의 모든 어긋난 과거를 남의 선택에 빗대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지금 내 자신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을 정당화시켰던 게 아니었을까.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쉬지 않고 흘러서 그런 나도 이렇게 살아가게 하고 있다.
절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직장인의 삶, 부모로서의 삶, 성인 남자로서의 삶.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과거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항시 내 주위에 있다.
그럼에도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말해 본다.
어쨌거나 모든 기억은 그저 추억의 대상일 뿐이다.
실패한 첫사랑의 추억, 중2병의 추억, 그리고 바보 같은 선택의 순간들도 다 추억거리다.
그 모든 게 나를 만들어 왔고, 여전히 구성하고 있다는 게 때론 화도 난다.
하지만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아팠고,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간절해 보일 수 있으나, 그곳엔 돌아간다 해도 정답이 없다.
혹여 정말로 그 옛날이 그리운 날엔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그 속에서는 반대로, 아쉬운 모습이 아닌 멋지게 성공한 나를 한번 그려 보자.
그럼 됐다.
그 모습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이젠 과거라는 어두컴컴한 맨홀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는지는 모르겠다.
세월 속에서 조각 나고, 깎이고, 결국은 다듬어지는 인생.
나도 모르게 만들어져버린 자신이 싫지 않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