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소년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책을, 밤 시간을 이용해 수 일간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100자평으로 발만 담구기엔 이 책은 왠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 평소 사용하지 않는 '마이리뷰'를 활용해서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1. 나는 극초반부에 유찬 파트에서 나오는 '속마음이 들린다는 설정'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는지, 그 파트만 두 번을 읽고 나서야 정주행을 시작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 독특한 설정 하나가 이 소설을 더욱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며, 그 이상의 다른 특수 능력(?)이 연이어 나오지 않은 점도 매우 좋았다.
2. 이 책은 트라우마를 잔뜩 담고 있다. 그래서 트라우마 극복기를 쓴 소설인 셈인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치료되어가는 과정들이 소설적 요소까지 갖춘 채 멋지게 펼쳐져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무언가가 해소되고, 또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과정 같은 것들이 우연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관계, 대화, 그리고 누군가의 노력, 정성 등이 발현돼 사그라드는 게 너무나 좋았다.
특히, 지오가 이장을 찾아가 들은 화재 이야기와 코치에게 들은 부모님 이야기는 가만히 있는 주인공이었다면 결코 찾지 못했을 내용인 지라, 대신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어주는 넓은 마음까지 갖춘 주인공 지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읽었다.
3. 울컥하는 장면들도 많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유찬이 계속해서 듣고 있던 그날의 소리가 사실은 부모님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의 소리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용서할 수도 없게 매일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새별이의 속마음이 들리고, 마을 전체의 응원을 받는 새별이를 보는 유찬의 그 끝 모를 답답한 마음이 결국은 지오를 통해 하나둘씩 풀려가는 과정 속에 내 마음도 같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 유찬이 너무 미칠 것 같아 자신을 괴물이라고 거칠게 표현할 때는 나의 과거가 보여 안타까움의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런 유찬이 신까지 용서하게 만드는 일을 지오가 해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4. 소설 내용과 별개로, 이꽃님 작가는 독자를 향한 자필 엽서를 넣어둔 채 책을 출간했다. 엽서를 읽으신 분들은 모두 느끼셨을 테지만, 작가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먼저 안부를 물어보는 모습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엽서는 책을 읽다가 중간쯤에 보게 되었는데, 보는 순간 '내가 어찌 이 책에 안 빠질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묘한 이끌림으로 완독을 앞당기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안부를 물어볼 차례다.
"작가님도 이번 여름, 건강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셋째가 태어나서 아기 재우고 밤마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남 경사의 현재 부인이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하는 장면이나, 태동 장난 아니라고 먼저 다가가 지오에게 만져보게 하는 장면 등은 진짜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