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그곳에는 참 괜찮은 비가 왔다
사람은 누구나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기억의 순간들이 많은데, 이 책을 읽을 때면 어릴 적 살앗던 비 내리던 반지하 집이 유독 생각났다. 아마 제목의 영향이 컸겠지.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반지하 집에서 살았었다. 무척이나 어린 나이였고, 그저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고민을 하며 지내던 시기였다.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개구쟁이였는데 비가 오는 날을 특히 좋아했다. 골목골목 고여있는 물웅덩이는 내가 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물웅덩이에서 발을 구를 때마다 튀어오르는 물방울과 젖어가는 옷 속에서 어찌나 신났던지. 아마 물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한숨 한 바가지 내쉬었을 것이다.
그때 그 반지하 집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던 물방울이, 양동이에 똑똑 떨어지는 그 소리가 어린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까. 애끓는 엄마의 마음은 모르고 그저 집에서도 내리는 비에 ‘와 우리 집에서는 비가 온다’며 신나했던 거 같다.
오늘도 비가 왔다. 다만 그때 내리던 비와 다른 비가 내렸던 걸까. 이제는 비가 오는 게 짜증이 난다. 하필이면 오늘 회사에서 창고 정리를 해야 해서 비 맞으며 일을 했거든.. 이제는 더 이상 비 맞는게 즐겁지 않나 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창고 안에 있던 오래된 책과 서류들을 트럭에 실었다. 비를 맞아 젖어 흐물흐물해진 종이의 모습이 내 모습만 같다. 비 맞은 내 몸이 무척이나 춥고 찝찝했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그때 내리던 비를 생각해본다. 그때와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리고 먼 훗날 오늘 맞았던 비는 내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