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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ㅁ

"망나니 다루기 전문가를 위하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 정보원들은 대부분 망나니 같은사람들이었다. 브로커나 테러범.
죽음을 팔거나 실행하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비밀스러운자아의 한구석에는 여전히 인간다운 면이 남아 있었다. 그런면면을 찾아내는 사람이 훌륭한 공작원이었다. 숨겨진 인간미에 호소해서 그들을 동지로 만든다. 그게 우리의 지론이었다.- P256
이번에는 그게 제대로 들어맞았다. 야캅은 새로운 고객이 생겨서 고마워했고, 카림은 최대한 길게 서론을 늘어놓았다.
덕분에 우리 사이의 신뢰감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언제 실제 판매가 이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게임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러 개의 게임판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세 개 대륙에 걸쳐 브로커와 테러범들을 포섭하면서, 스스로 무기상으로서의 위상을 서서히 높여갔다.- P257
그리고 마지막으로, 딘과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했다. 나 혼자 중국에 파견되면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6년 동안 우리는 접촉이 금지되었다. 아니면 또 한 번 행정상의 이유로 결혼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함께 중국으로 떠나려면 출국 전에 식을 올려야 했다.- P262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가 그걸 안다는 자각하에, 우리는 행복했다. 허구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만의 작은 진실을 만들어가면 되니까.- P262
하지만 첩보원에게 잠긴 문은 일상 같은 것이었고, 우리는 남은 부분에서 서로 간에 존중할 부분을 발견했다. 그러니 이일에 수반되는 거짓말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으며, 내가 혼자 있을 때조차 거짓된 껍데기를 벗어내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걸 그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벌써 1년이 넘도록 미술상 행세를 하는 무기상 행세를 하다 보니, 이제 내 안의 어느 부분이 그녀이고 어느 부분이 나인지 점점 더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진짜 나로 살아도 지금과 똑같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딘은 잠결에 움찔움찔 놀랐다. 지금 내가 이렇게 걱정하는걸 알면 그는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 전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지금은 갑옷을 벗을 때가 아니다. 그가 준 반지가 내 손가락에 느슨하게 끼워져 있다. 구명보트처럼. 아니면 족쇄처럼. 어느 쪽이든 내가 허우적거리지 않게 단단히 붙들어줄 것이다. 지금은 허무에 빠지는 것보다 그 편이 낫다.- P264
다음날은 딘의 생일이라서, 나는 한밤중에 풍선을 불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호텔 방이 풍선으로 가득 찬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과거의 무서운 기억들을 지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풍선을 밟은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꽥 소리를 질렀다.- P265
작전상 필요한 신분증은 진짜 차량국이나 여권 사무국, 사회보장국 등에서 발급받았다. 보안 등급이 높은 연락원이 그 사무실의 다른 누구도 모르게 우리의 신청서를 아무런 검토없이 시스템에서 통과시켜주는 것이다. 완벽한 진품 신분증은 외국 교도소에 수감될 가능성을 크게 줄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일 처리가 느린 차량국에 가서 <쥬디 판사>가 무음으로 재생되고 있는 대기실에 앉아 다음 번호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P267
가상의 삶을 사는 게 힘든 건 내가 이걸 거짓이라고 자꾸 상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 때조차 이게 진짜 삶인 척 행동하고 그렇게 믿으면, 언젠가는 위장없는 진짜 삶을 향한 갈망이 사라지고 나를 덮고 있는 껍데기가 그대로 나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P268
연기를 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깊이 몰입할수록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쓰레기통뒤에서 잠이 깨는 것이다.
내 경우는 중국의 호텔 방에서 명멸하는 화재 경보기의 빨간 불빛을 응시하며 눈을 떴다.
이쯤에선 이미 다른 사람인 양 흉내 내는 기술도 많이 늘어 있었다. 프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지만 그동안은 늘 중간에 휴식기가 있었다. 중간중간 워싱턴으로 돌아갔고, 안가에서 존과 닐, 피트와 시간을 보냈으며, 술집에서 마이크와 데이브를 만나 흥건히 취하기도 했다. 전부 나의 이중 현실을 공유하는 가족 아닌 가족들이었다. 24시간 내내 허구 속에서 살아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짓으로 점철될 몇 년간의 세월이 시커먼 공허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릴 휴식기도, 진실을 딛고 설 발판도 없었다. 우리 두 사람과 비밀 통신 장비, 겹겹이 쌓아올린 우리의 거짓들만 존재할 뿐.- P273
깨어 있는 나 자신에게 너는 지금 사실 꿈속에 있다는 쪽지를 건네받은 것처럼 놀라운 일이었다.- P275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집밖의 벽돌로 된 보도를 지나갔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미소를 짓고 냄비를 휘저었다. 우리를 스쳐지나가며 우리 세계를 힐끗 들여다보는 낯선 사람들을 위해.
엄마는 그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연기했다. 좌절과 공포와 고통을 모르는 현모양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총명함과 고뇌를 두루 갖춘 아름답고 반짝이는 인간으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추억 같았다. 우리의 실제 모습과 어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지기를 바라는 우리 모습 사이의 차이를 처음으로 인지했던 때였다.- P278
중국도 러시아와 같은 ‘주요 표적‘ 국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정교한 방첩 전술을 구사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 나라 안에서 어떠한 작전도 수행할 의도가 없었지만,
중국 정보 당국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곳의 요원들은우리의 계획을 알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이 땅을 밟은 순간부터 우리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정적인 감시, 즉 노점상들에게 돈을 쥐여주고 특정한 외국인이 오가는 시간을 기록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간차를 두고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는 감시팀보다 훨씬 파악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저녁에 먹이 사냥을 나온 짐승처럼 눈빛을 번뜩이며 연필과 공책을 꺼내 드는 덕분에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번은 내가 깜빡하고 택시에 파시미나 숄을 두고 내렸는데, 제복 입은 경찰관이 우리 집 문 앞으로 숄을 들고 왔다.- P283
작전 지령-본부에서 기존 정보원들에게 보내오는 질문, 우리가 포섭하려는 대상에 관해 사무관들이 조사한 내용, 제3국에서의 접선 허가 요청에 관한 승인은 비밀 통신장치를 통해 전달되었다.- P285
아캅과는 비밀리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다른 호텔에 스위트룸을 예약해놓았다. 정보원으로 포섭하기 위한 제안은 행인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게 좋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포섭 후보가 지금부터 어떤 일이 닥칠지 알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였다. 언젠가 상사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결혼 프러포즈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 이야기를 어느 날 불쑥 꺼내지는 않잖아. 처음엔 조금씩 힌트를 흘려주지. 그러면서 간을 보는 거야. 상대가 받아들일 거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영영 안 물어볼 줄 알았잖아!‘라고 상대가 앙탈을 부릴 정도로."- P287
다음에 이어질 질문들은 앞글자만 따서 STINC라고 불렀다.
보안Security (오는 길에 현지 정보국 요원과 마주치진 않았나요?), 시간Time(시간이 얼마나 있어요?), 첩보Intelligence (긴급하게 전달할 정보가있나요?), 다음 접선 Next meeting (중간에 외부 개입으로 대화가 중단되면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죠?), 위장 Cover (혹시라도 심문을 받게 되면, 우린 이것 때문에 만나고 있었다고 대답해요).- P290
판매 건수가 있을 때마다 구매자가 누구고 어떤 무기에 왜 관심을 보이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줘요. 그러고 나서 그 무기가 사용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을 함께 강구하는 거예요.- P296
"그래서 절차가 어떻게 돼요?" 그가 물었다. "당신하고는 얼마나 자주 만나야 하죠?"
"무기 주문이 들어오거나 배송이 이루어질 때마다요. 당신이 내게 할 말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요."
"당신한테 어떻게 연락하죠?"
나는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꺼냈다. "날 보고 싶으면 라테를 사 마셔요. 그리고 24시간 후에 만나는 거예요. 긴급한 사항이면 전화를 해요. 내가 받으면 마리나를 바꿔달라고 해요. 난 전화를 잘못 거셨다고 할 거예요. 그럼 전화를 끊어요. 내가 다시 보안 라인으로 연락할게요."- P297
"날 죽게 내버려두지 마요." 마침내 그가 말했다.
"당연하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커리어 Courier 서체로 계약 조건이 인쇄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아캅이 CIA와 협력한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계약서였다. 그에게 지불될 임금과 추후에 환급받을 수 있는 경비에 관해서도 쓰여 있었다. 맨 밑에는 우리의 서명이 들어갈 빈 줄이 그어져 있었다.
물론 내가 무기상과 나의 서명이 들어간, 유죄를 강력히 입증할 만한 서류를 들고 길거리로 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가짜 서류였다. 하지만 이름을 서명하는 행위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해서, 본부에서는 상대가 자리를 뜨자마자 종이를 파기해버릴지언정 확실한 서약 의식을 치러두는 편을 선호했다.- P298
그가 떠나고 나서, 나는 계약서를 초등학교 때 만들던 게이샤 부채처럼 접었다. 그리고 아코디언처럼 접은 그 종이의 끝을 변기 안에 놓고 불을 붙였다. 연기와 재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오래된 러시아 첩보 기술이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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