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저가 아무리 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주변마저 빈해 보이면 곤란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환경주의가 아니라 환경주의적인 것이었다. 둘 사이에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 했으며, 모르는 척한다는 것도 서로 모른 척했다. 일종의 공모였다.- P66
상암에 다녀온 날 이후 나는 은협의 인생을 얼마간 대신 살아주고 있었다. 은협이 자기 존재를 의탁, 혹은 위탁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몸이 두 개면 한 몸은 놀고 한 몸은 전과 똑같이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몸이 두 개든 스무 개든 모자랄 수밖에 없다.- 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