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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뭐니 뭐니 해도 ‘롤라 극장‘이다. 가상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주인공 시점으로 유장하게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용법도 까다롭지 않다. 요약본 리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극장을 고르면 된다. 형식별, 장르별, 시대별로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신작이 끊임없이 개봉되므로 선택의 폭은 거의 무한대다.
극장 속 서사는 실제 삶과 똑같이 인식된다. 자신의 자아가 서사 속주인공의 자아로 대체되기에 가상의 삶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다. 인지하는 시점은 극장을 벗어난 후다. 극장 속 삶이 끝나야만 본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삶은 예외 없이죽음에 이르도록 설계돼 있다.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극장 속 삶이 좋았다면 반복해서 갈 수도 있다. 스포일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삶이 재시작되는 순간, 이전 삶에 대한 기억은 말끔하게 사라진다.
반대로 이전의 삶이 싫었다면 다른 극장을 찾으면 그만이다. 점점더 행복한 삶을 찾다 보니 행복에 내성이 생겨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고달픈 삶을 택할 수도 있겠다. 도파민 평형을 되찾는 데 가장 유용한 전략이다. 쾌락 역치를 낮춰 사소한 즐거움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므로.- P20
"너는 대학을 나와 월급쟁이가 돼야 한다."
행여 운동에 대한 염이라도 품을까 봐 그랬을까. 운동할 깜냥이 아니라고 나를 세뇌시켰다. 패기 없는 성격을 근거로 들었다.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다. 나는 일찍이 중학생 시절에 패기를 폐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패기란 위험을 수용하는 범위와 동의어였다. 위험이란 생존을 압박하는 무엇이며, 내겐 그 ‘무엇‘을 품고 살 이유가 없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위험인 인생에 뭘 더 얹겠다고...……….- P42
그 새벽 이래로 나는 삶에 대해 희망을 품지 않았다. 내게 희망이란, 실체 없이 의미만 수십 개인 사기꾼의 언어가 되었다. 절망의 강도를 드러내는 표지기, 여섯 시간이면 약효가 사라지는 타이레놀, 반드시 그리되리라 믿고 싶은 자기충족적 계시, 그 밖에 자기기만을 의미하는 모든 단어.-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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