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한빈 2023/03/0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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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오스터 컬렉션 박스 세트 (리커버 특별판, 전4권)
- 폴 오스터
- 56,880원 (10%↓3,160)
- 2022-08-03
- : 5,356
추리 소설의 탈을 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이다. 인물들의 행적은 중요하지 않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오스터의 그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자전적이다. 이야기에서는 쓰여진 것만이 존재한다. 인물과 사건은 작가에 의해 선택된 요소들로 조형된다. 물론 이 때 요소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모두 포함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아닌 한 사람의 생애는 어떨까.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다투고 잠자는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무엇으로 만들어져있는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나열해 볼 수 있다. 딱딱한 키보드 타자기, 화면 위 점멸하는 텍스트 커서, 속이 훤히 드러다 보이는 컵 속에 찰랑이는 커피와 얼음, 햇빛 아래 명암을 드러내는 아스팔트 바닥, 묘사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일상세계의 사물들은 나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에는 컨텍스트가 없다.
뉴욕 3부작에서 돋보이는 것은 서사가 아니다. 인물이다. 그리고 인물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뉴욕 3부작의 인물은 마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작가처럼 세상을 본다. 사물 뒤에 의식이 오지 않는다.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에 사물이 끼어드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고나간 인물들은 자신을 현실에 붙들어매는 관계들을 잃어버린다. 이제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 외부 세계 어딘가에 놓여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은 이미 예전에 균등함을 잃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관계하던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모두 떠난지 오래다. 머무는 곳은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인물의 시선이 도달하는 곳. 인물이 보고 듣고 기록하는 하나의 대상이다.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이 불쌍한 영혼은 자신을 지탱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지켜보는 단 하나의 대상만을 제외한다면. 시선 끝의 그것이 의식을 유린한다. 이제 시선의 소유자는 자신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그렇게 흐려진 의식 끝에 인물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오스터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말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미 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했기 때문이다.
빵 굽는 타자기나 낯선 사람에게 말하기에 실린 에세이들을 읽고 오스터 초기작을 읽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경험이 작품의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이라던지 선박 생활이라던지 돈을 뿌려대며 집 없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인물에 대한 일화 등은 반복해서 변주되는 테마다. 폴 오스터는 자신에게 정직한 작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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