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한빈 2023/03/0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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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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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지났다. 크리스마스, 하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온기를 떠올린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항상 춥다. 입속에서 맴돌던 하얀 숨은 먹먹한 하늘로 떠오르고 하늘에서는 때때로 하얀 눈이 가라앉다 떠오르다를 반복한다. 어릴 적에는 빨간 모자에 하얀 수염이 뭉성한 할아버지가 한쪽 어깨에는 보따리를 매달고 한 손에는 사슴의 고삐를 쥔 채 저 하늘을 달리는 그림을 그렸고, 밤이 깊어져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웅크리고 앉아 이불을 덮어쓰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곤 했다. 매일 열심히 살다보면 쉽게 잊혀지지만 그래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래서 매번 돌아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보통 사람들은 비슷비슷하다. 그저 조금씩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때때로 그 작은 다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 낯선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한번 낯선 것이 되고 나면 그것처럼 성가신 것도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자기를 타이르고 다독여봐도 그것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거슬려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어쩌다 한 번 부딫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사람과는 영영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생각하는 것이다. 저런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까?
아무렴. 그런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같은 온기, 같은 설렘, 같은 선물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는 온다. 물론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를 아주 시퍼렇고 으슬으슬한 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딱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크리스마스를 가지고 색다르게 떠올려보려고 조물딱거려보아도 모두의 크리스마스에서부터 멀리 떨어질 수가 없다. 다양성을 긍정하고 자아가 존중받는, 그렇기에 서슴없이 자기를 주장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은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겐 그저 좀 미적지근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려고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꾸미거든.”
“정말이지 말은 짧을수록 좋아. 그것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다자이의 단편집 <만년>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카버를 읽고나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대성당>에서 카버는 여전히 최소한의 말로 모두를 납득시킨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리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아무리 낯설게 느껴지는 이라도 어떤 순간에는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 느껴지는 때가 온다. 그리고 사람은 때때로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마 크리스마스가 춥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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