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한빈 2023/03/0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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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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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9
- : 2,058
늘 보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것들이 돌연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나는 곧 당황한다. 약속 같은 것이다. 늘 같은 풍경을 보여주리라는 믿음 혹은 기대. 매일마다 얼굴을 마주하는 나날들은 예측 가능한 기대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다. 내일 별이 어디쯤 자리할 지 안다. 매일 밤 뜨는 달의 모양을 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복되는 작은 기대와 보답들이, 이들이 만들어낸 신뢰가 나를 일상 속에 단단히 붙들어맨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기대들이 어긋나는 날이 온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없어야 할 것은 있다. 그런 순간들은 낯익은 세계를 일순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킨다. 이런 생경함은 이질적인 감각을 동반한다. 몸은 붕 뜬 듯하고 머릿속은 어지러이 뒤섞인다. 현실에 바싹 밀착된 사람들에게 생소함은 꿀결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몽상가는? 그는 늘 꿈꾸듯 산다. 도시에 말을 걸고, ‘마치 거미줄에 걸려든 파리처럼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장난 삼아 자신의 화폭에 짜넣으며’ 시간을 보낸다. ‘짧은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주위 모든 것에 시간을 낼 수 있는’ 그에게 꿈은 일상과 다를 바 없다. 그에게 낯섬 그리고 생경함이란? ‘멋진 밤이다.’ 혼자서 작은 소리로 꼭 뭔가를 흥얼거리던 그는 곧 ‘저만큼 앞에 어떤 여인이 운하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서’ 있는 여인을 발견한다. 그에게 이런 뜻밖의 광경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현실이다. 멋진 밤의 여인, 갈색 머리의 여인,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여인은 몽상가에게 있어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인물이다. 나스텐카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밤이 그녀를 운명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실 나스텐카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와 몽상가가 함께하는 3일의 밤은 거의 통속 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그전까지는 동등했던 인물의 위치에 층이 생긴다. 나스텐카는 지워지고 몽상가만이 남는다. 3일의 밤은 그저 지극한 기쁨의 순간으로만 남는다. 마치 한편의 극과 같은 이 소설에는 사실 변화란 것이 없다. 몽상가는 몽상가로 남고 나스텐카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한번 들어왔다 나간 것 뿐이다. 그래서 <백야>는 마음을 끈다. 몽상도, 현실도, 몽상가도, 나스텐카도, 그 무엇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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