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점 반>은 1940년에 윤석중이 쓴 동시이다.
점(點)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넉 점 반은 네 시 반을 가리킨다.
책 첫 장에 ‘그리움을 담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어른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며, 우리의 아이들을 바라보라는 진지한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분꽃 사진이에요
1940년이면 일제시대. 우리의 말과 글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도 변함없이 피어 오르는 분꽃처럼 그림책 안의 아기는 천진난만 하면서도 당당하다.
시는 1940년대 쓰여 졌지만 그림책 안의 모습은 그리 오래 전인 아닌 1970~80년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겟집 앞의 아이스크림 통과 ‘미원’이라고 써 있는 봉지가 회전 걸게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풍경이라든지, ‘원기소’라 써 있는 광고지, 통에 담겨 있는 비닐우산 등등이 왠지 일제시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책 뒤쪽에 가면 아가의 집과 구복상회는 작은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책은 ‘아가, 영감님, 어머니, 데이트하는 청년’의 시선을 좇아가며 읽으면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의 아가는 ‘물 먹는 닭 →지렁이를 잡아 옮겨가는 개미떼→잠자리→분꽃’ 쫓아가며 재미있는 놀이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서 잊지 않으려는 듯 “넉 점 반, 넉 점 반”을 중얼거리면서 다닌다. 그러다가 해를 꼴딱 넘겨 돌아오면서 “엄마, 시방 넉 점 반 이래.”라고 말하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마치 시간이 넉 점 반에서 멈춘 후 나의 어린 시절로 잠시 갔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되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섯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네시반에 나가 해를 꼴딱 넘겨 돌아와도 전혀 위험하기 않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른 들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에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빠져 들곤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뭔가에 빠져 몰두할 때가 있다면 넉넉한 여유를 갖고 지켜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을 덮는 순간, 동심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행복감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