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났던 '문제아'는 서두부터 내 마음을 확~ 사로 잡았던 책이다. 당장 샀다. 당장 사서 그의 순수한 문학 세계를 간직하고 싶었다.
서두의 작가의 말은 특이하게도 일기 형식을 빌어서 쓰여 졌는데, 내용이 참 솔직하고 순수해서 내 심장에서 방망이질 소리가 다 났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작품 속 동화들은 하나 같이 읽는 이의 정곡을 찌르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고, 산업재해, 정리해고, 노숙자, 이혼가정 자녀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 문제아 아닌 문제아에 대한 시선, 학교 촌지, 남북 평화 통일에 대한 꿈, 이름없이 스러져 간 민주투사들, 버려지는 애완견 등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올바른 시각의 필요성을 골고루 전달한 글들이었다. 그리고 동화의 맨 마지막마다 쓰여 진 <끝>이라는 글자는 수록된 모든 글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쓰여졌음을 알게 해 준다. 저자는 아마 이 책을 통해서 "문제아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잘못된 시선이 문제아가 아닌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아주 잘 쓴 책이라 생각되고, 초등 중학년 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혀 졌으면 하는 책이다.
먼저, <손가락 무덤>부터 차근차근 보자면, 한창 젊은 나이에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노가다 배관일을 전전하는 힘 없는 아버지요, 가장이지만 손가락 무덤사연을 통해서 중요한 말을 던진다. "공부한답시고 어려운 거 머리속에 담는다며 제일 쉬운 것들을 까먹지는 말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많이 배운 사람은 모두 훌륭한 사람, 좋은사람이 되야 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모두 훌륭한 사람만 되려고 하지 다들 사람으로서 꼭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소양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아빠와 큰 아빠>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던 형제간이 '정리해고 통지서'로 인해 하루아침에 화목이 깨지게 되는데, 과연 두 가정이 다시 행복하게 되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이라도 회사에 다녀서 나머지 식솔들을 건사할 것인가?, 아니면 윤석이 말대로 두 가장이 사측의 요구에 응하고 힘을 합해 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나라면.... 어렵다. 참, 어렵다. 때론 아이들의 말 속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독후감 숙제>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가 독후감 숙제할 변변한 책 한권이 없어서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주운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 일기'를 통해서 자신도 수학여행비 5만원이 없어서 선생님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교사는 늘 학교 업무와 학급일로 시달리고 있는현실이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이혼가정 어린이, 편모편부인 아이들에게 동정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교사가 이런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로 이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봐 준다면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교사와 어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
<전학> 이 책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내용이었다. 학군때문에 살고 있지 않은 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가면서 겪게 된 한 아이의 이야기. 아마 둘째가 작년에 초등학교에 첫 입학을 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녀야 원칙인데 극성 엄마때문에 일부러 멀리 떨어진 '미래초등학교'에서 불행한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5학년때 기어코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원래 살던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 아이는 얼마나 좋았으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안가고 '선옥초등학교'에서 졸업도 안하고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겠는가. 난 이 글의 극성 엄마까지는 아니지만 과연 내 아이들이 쫄지 않고 마음 편히 학교 생활을 하게 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 무엇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문제아> "나는 문제아다.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나는 문제아다. (작가의 말)"
처음부터 문제아는 없다. 문제아라는 선입견이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다는 뜻이 아닐까? 창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아빠랑 어렵게 사는 아이다. 아빠가 다치셔서 어떻게든 병원비라도 마련해 보려고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는 기특한 아이요, 할머니 약값을 불량배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기있게 맞서는 아이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싸움이나 해서 남의 이나 부러뜨리는 무서운 아이, 수업시간에 잠자코 엎드려 잠이나 잤으면 하는 아이, 폭주족처럼 오토바이나 타는 아이로 본다. 새학기가 시작해서 새로운 각오로 살아 보려고 해도 문제아 딱지 때문에 문제아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아이다. 여러분, 언제까지 하창수가 문제아로 살게 놔 두실 겁니까? 창수가 그냥 보통 아이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게 우리 모두 도와 주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김미선 선생님>은 '학교 촌지'라는 다소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풀어 가는 내용이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들의 어두운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혹자는 그래서 "정말로 이혼하고 싶다면 제발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 이혼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미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부모의 이혼으로 그 아이가 받게 될 상처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동정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는가. 혹여 잘못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거나, 괜히 잘 대해주는 척, 관심있는 척, 작가 말처럼 "집안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느니 하면서 자꾸 이상하게 보는 것은 문제아가 아닌 아이를 '문제아'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는 일은 "그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되 그냥 보통아이로 대해 줘야 한다.
<김미선 선생님>과 <문제아>는 주제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이혼가정 아이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 보지 말고 그냥 보통아이로 봐 주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선생님과 달리 진정으로 아이들을 이해해 주시는 김미선 선생님을 촌지문제와 결부시킨 점이 약간 겉돈다. 또한 주인공 여자 아이는 선생님이 촌지를 받았든 안 받았든 상관 없이 내년에도 담임선생님이 되어 주셨으면 하지만 독자입장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김미선 선생님과 같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선생님은 절대로 촌지를 받지 않았기를 바라고, 당연히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받았나, 안 받았나'에 대한 궁금증은 최고조로 끌어 올려 놓고 이 문제는 흐지부지 끝을 맺었을까? 내가 글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쉽다. 만약 기회가 되서 "작가 박기범"을 만난다면 꼭 물어 봐야겠다.
<끝방 아저씨> 재개발 재건축으로 인한 철거민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료 배식자, 노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을 꼬집는 글이다. 사지 멀쩡하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그저 남에게 기대 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오히려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이 자원 봉사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지 그저 할 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송아지의 꿈> 예전에 농가에서는 소 한마리가 큰 재산이었다. 그런데 자꾸 소값이 하락해서 농민들은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울상이다. 이 글은 소떼 방북이라는 사회 이슈를 통해 축산 농가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분단현실, 실향민의 아픔을 그렸다. "꿈"이라는 글자는 "잠잘 때 꾸는 꿈"이라는 뜻도 되지만 "희망"이라는 뜻도 된다는 점에서 꿈속에서 '나 = 송아지'였기에 "송아지의 꿈"은 "나의 꿈"이다. 송아지의 입을 빌어서 말하되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작가의 생각을 피력한 좀 복잡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설정이다. 사회 돌아가는 문제를 어른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들려 줄 말이 없다. 고작 만날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주냐,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잔소리만 늘어 놓는 것 밖에 더 되지 않은가? 내 자녀가 공부해서 남 준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자녀가 의욕을 갖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이 글을 읽고 아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사회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사회 이슈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 보면서 자녀와 자연스런 대화의 장을 열게 될 것이다.
<겨울꽃 삼촌> '박래전'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 땅의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들려 줘야 하는 지 말해 주고 있다.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막연하고 아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요즘은 "전태일"과 같은 인물도 만화로 나와서 아이들이 세상을 폭넓고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어진이> 처음에는 장애인을 둔 가족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진이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 버려진 애완동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병든 어진이를 가족의 일부처럼 생각하는 득철이네 식구들에게 감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예쁘고 귀여워서 키우다가도 병들고 귀찮아지면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는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다. 박기범의 또 다른 동화 <새끼개>, <어미개>에도 애완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