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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jn님의 서재
  •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 12,150원 (10%↓670)
  • 2026-05-20
  • : 958
이 책의 무대가 되는 곳은 18세기 말 런던과 파리이다.
특히 파리의 경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서술 되기 때문에 긴장도가 굉장히 높다. 읽는 동안 독자는 18세기 비교적 안정되고 엄숙한 런던 사회의 시민이 되고 배를 타고 건너가면, 드러누워 본인들의 내일과 어찌하면 더 백성들을 쥐어짤 수 있는지 고뇌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방으로 들어가 생각을 엿듣는 영혼이 되고, 폭정에 짓밟히고 음식도 아닌 것들을 가족들과 나눠먹으며 혁명의 씨앗을 심는 민중이 되고 마지막엔 폭정이 낳은 또 다른 악몽인 공포 정치의 무대인 기요틴(단두대) 앞의 구경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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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폭압이라는 절대적인 악은 한 인간의 내면을 아예 바꿔버린다. 동정심과 연민, 측은지심 같은 선한 면은 점점 없어지거나 ‘아예 필요없는 것’이 되어 복수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마비시켜 버린다. 압력을 가해 계속 누르고 짓밟다 보면 어느샌가 터져버리는 게 진리이다. 이때 뭉친 민중들은 그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혹은 더 잔혹한) 행위로 이뤄지는 1차원적인 복수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증오는 한번 타오르면 그 원흉이 없어져도 본인이 단념하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종국에 가서는 무엇에 분노하는 지 조차 잊어버리고 눈 앞에 있는 사람(무죄,유죄 상관없이)을 당장 군중의 기분에 따라 정해진 판결을 수행한다. 문제의 기본적인 해결책은 처형이 아닌 현재에 우리가 어떻게 체계를 구축하느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잔인한 숙청과 숭고한 죽음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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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아버지인 마네트 박사는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내면화해서 삶의 원동력이자 딸을 위한 가장 큰 위로와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에 사용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살려고하면 살아진다는 문장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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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 주인공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루시와 드파루즈 부인이 책을 덮어도 생각이 났다. 루시와 테레즈의 공통점은 유년기의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둘중 누구의 아픔이 더 비극적인 가에 대한 논의는 객관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각자의 비극을 갖고 살고 제 3자가 그것에 대한 정도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와 테레즈의 차이점은 바로 ‘세상을 향한 원망을 어떻게 풀었는 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누군가를 원망하더라도 그 대상을 미워하고 욕하되 악마화하지 않았다. 또한 루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의식을 갖고 버텨냈다. 반대로 테레즈의 경우 자신의 증오를 은연중에 공포 정치 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절대적 악의 세력으로 포장해서 주변을 몰아 붙였다. 이 테레즈의 모습이 폭정을 일삼았던 귀족들과 별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개인의 풍요와 욕망을 위해 사는 귀족들, 개인의 복수심을 위해 희망고문하는 테레즈. 이 둘의 끝은 결코 좋을 수 없다. 복수를 행할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본능을 이길 수 있는 차가운 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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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날짜부터 이 책의 엔딩 날짜까지 꽤 긴 시간을 달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압축적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읽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또한 고전 문학이기 때문에 소설의 문체가 은유와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해석하며 음미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서술과 전개로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이 순식간에 넘어간다.
이 책은 해외 고전 문학 입문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전개가 되고 책 뒷부분에 주해가 있어서 이해하기 편하다.
삼각관계, 우정, 모순된 심정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심리도 잘 묘사가 되어있어서 읽다보면 어느새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펭귄 클래식으로 부터 제공 받은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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