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뉴스가 매번 뜰 때마다 인터넷은 '후끈' 달아오른다. 한쪽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받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직종을 선호하고 주로 남성이 선호하는 직종이 고연봉이기 때문에 (책에서는 이것을 '직종분리'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싸움을 자주 지켜보던 나에게 신기한 댓글 하나가 있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성별 임금격차의 이유에 대해서 끝판왕같은 분석을 했는데 왜 아직도 한국은 그 이유에 대해서 싸우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적은 댓글이었다.
2. 그 이후 인터넷 서점을 확인하던 중 익숙한 이름ㅡ클라우디아 골딘ㅡ이 나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번역되자마자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읽으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1장인 '또 하나의 이름없는 문제'부터 5장인 '베티 프리단이 틀린 것과 맞은 것'까지는 (더 넓게 잡으면 6장 '조용한 혁명'과 7장 '혁명을 보조하는 보조생식술'까지)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종의 여성사를 읽는 것 같았다. 각 시대별(출생연도로 5집단으로 나눠서)로 미국의여성들(주로 대졸 백인 여성들)이 어떻게 커리어와 가정을 추구했는지 다루었는데 옛날 역사책을 읽는 것 같아 어렵기도 했고 경제학책 답게 많은 표들과 그래프가 있어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3. 하지만 본격적으로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임금격차를 다루기 시작한 8장 '사라지지 않는 격차'부터 10장 '온콜'까지)은 골딘의 책만이 제공하는 인사이트와 분석이 있어서 매우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비로소 에필로그까지 다 읽었을 때 전반부의 여성사 부분과 후반부의 임금 분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부제로 있는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에서 나오듯이 현재 우리와 동세대인 집단5가 여정 중 마주친 큰 과제가 온콜로 인한 임금격차이며 이것을 집단4인 골딘이 선배세대로서 분석해놓은 책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느끼고 나서 전반부를 다시 읽어보니 책의 분량 50%를 넘게 쓰면서 왜 그렇게 집단을 세세하게 나누고 설명했는지 이해가 갔다.
4.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만의 유니크한 생각이 조리있게 잘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도서관에서도 책을 신청해 볼 수 있으나 직접 돈을 지불해 책을 사는 이유는 저자의 유니크한 생각을 내 페이스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도 있지만 저자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 책중에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책을 보기는 어렵고 그마저도 제대로된 근거와 논리가 없는 책들이 많은데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저자의 분석과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읽어볼 만하다.
둘째, 번역이 훌륭하다. 번역된 도서도 많이 읽는 편인데 번역투가 너무 심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도서관에서 영어원본을 보면 어려운 원본을 보는게 더 나을 정도의 책들도 많은데 본 책을 읽을 때는 번역된 책을 읽는 티가 너무 나지 않고 자연스러워 번역가의 노고가 느껴졌다.
셋째, 대중성과 전문성을 둘다 잡았다. 비록 p.394 ~ p.479에 걸쳐서 각종 부록과 주석이 있을 정도로 인용이 많은 학술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지만 전혀 보지 않아도 책의 취지나 저자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있다.
5. 반면 아쉬웠던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편집이나 번역자의 안내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종류의 서적들은 원저자의 뜻을 헤칠 우려가 있지만 번역자 후기나 자체적인 서문으로 이 책이 갖는 위치나 한국에서 가지는 의미등을 서술하면서 독자에게 가이드를 주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없어서 (일부러일 수도 있지만) 아쉬웠다. 미국은 아무래도 직접적인 고용차별이나 승진누락이 힘들겠지만 한국은 몇몇 뉴스에서 나오듯이 대졸자에서도 고용차별 사례가 엄연히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골딘의 해석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때 미국의 현황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안내문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둘째, 골딘의 해결책이다. 물론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책이라서 해결책은 조금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지만 남성 노동자들이 유연한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기업에 스스로 요구하거나 탐욕적인 일자리(온콜을 요구하는)를 제공하는 기업을 피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건 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책 곳곳에서 조용한 혁명인 경구피임약이나 생식보조술, 일시적으로 남성 노동자의 감소나 여성 노동력을 요구하는 기업의 탄생 등 비교적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장벽이 줄어들었다고 표현했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미온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나 AI가 발전하는 지금, 온콜을 요구하지 않은 업무에는 AI를 쓰고 온콜에 대한 부분만 사람을 쓴다면 과연 노동자들이 기업에 강력한 요구를 하거나 자발적인 백수가 될 수 있을까?
6. 성별 임금격차가 단순 고용차별이나 승진누락, 임금차별(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것) 등으로 설명되는 임금격차가 1/3 정도고 직종분리 등을 보정하고도 임금격차가 발생하며 젊은 시절에 온콜을 요구하는 탐욕적 일자리를 얼마나 수행했느냐에 따라서 주요한 격차가 나는 것이라는 분석만으로도 이 책은 22000원(10% 할인해서 19800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했지만 여성주의적인 시각때문에 불편해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맞벌이가 점점 많아지고 커리어와 가정이라는 저글링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되는 건 성별의 관계없이 현재의 우리 모두가 해야되는 일 아닐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