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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님의 서재
  • 더 나쁜 쪽으로
  • 김사과
  • 10,800원 (10%600)
  • 2017-08-15
  • : 774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에는 방황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식할 수 없고, 우리 자신에게 닥친 일조차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지만 더 나쁜 쪽으로는 이것이 끝이 아님을 말해준다.

1부가 해외를 배경으로 한다면 2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 ‘더 나쁜 쪽으로’의 ‘나’는 ‘그’를 역겨워하면서도 그와 그가 있는 거리를 떠나지 못한다. ‘나’는 거리에서, 세계에서, 자신에게서 벗어나려하지만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읽는 중간 중간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가 다시금 줄거리가 복기되곤했다. 이런 낯선 서술 방식은 ‘나는 너를 순서 없이 기억한다’는 문장을 통해 비로소 이해되었다. 소설의 형식이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내용에 잘 어울렸다.

‘카레가 있는 책상’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데 무관심, 소외 같은 것들을 잘 보여주었다. 사람들에게 공감능력, 정의감 따위는 없어보였다. ‘밖의 사람이 죽도록 얻어 맞고 있어도, 안의 사람들은 잠드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박승준씨의 경우’는 옷을 주워 입을 정도로 가난한 박승준씨가 우연히 명품 양복을 주워 입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초대되어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그것들이 허황되고 부질없다는 느낌을 심화시켜줄 뿐이다. 박승준씨에게 주어졌던 잠깐의 화려함은 비극을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같다.

‘이천칠십X년 부르주아 6대’는 미래를 상상하여 쓴 소설로 꽤나 흥미로웠다. 홀로그램 기계, 젊음과 수명의 연장이 가능해진 시대지만 부르주아들은 빅토리아 시대, 조선 후기 문화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기를 바랐다’는 구절은 부르주아의 욕망에 대해 생각케한다.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하며 편이를 누리는 한편 과거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일반인들은 기술의 발전과 동떨어져있다. “그대는 부르주아 6대의 삶을 아시나요.” “나는 과천시 거주민의 비참함을 알지.”에서 알 수 있는 상황은 그닥 낯설지 않았다. 비단 미래의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삶에 대한 희망 없이 무기력하게 방황하는 인물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원초적인 욕구 정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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