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추기경들 속에 마흔 일곱 살 젊은 동양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 1969년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김원석 저)를 읽고
- 쁘띠뽐므
[ 리 뷰 목 차]
1. 들어가기 전에
2. 나이 지긋한 추기경들 속에 마흔 일곱 살 젊은 동양인, 김수환 추기경
3. 어머니, 어머니
4.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던 학생들이 모이던 명동성당 옆을 걸으며
5. 열린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
6. 김수환 추기경님이 하늘로 가신 날
7.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하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다
8. 또 한분의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
1.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밝혀두고 싶은 점은, 제가 비신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흔히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듯이 오만하고 독선적인 ‘나신교’는 더더욱 아닙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교인이 된 이유와 가치관이 있듯이, 저 또한 나름의 이유와 가치관이 있습니다. 신자와 비신자들 간에도 태도의 공통분모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 유무와 관계없이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종교관과 신념이 자신과 다르다 하면 심하게 배타적으로 대하며 나쁜 혐의를 덮어씌웁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믿음을 존중하고, 또 내가 신자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종교인을 존경하기도 합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하는 사람들 중의 한명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데 과연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존경하고 사랑할 자격이 주어질까요?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된다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입니다. 저는 김원석님의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를 읽으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제가 막연히 추측하던 추기경님의 성격과 이미지, 가치관이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더욱 존경하게 되었지요.
또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사회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책 위주로 간단하게 보고 싶으시면 발췌한 부분을 중심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 인증샷 나갑니다. 출판사에서 사정이 있었던 건지 예정보다 훨씬 늦게 도착해서 혹시 분실된 건 아닌지 약간 걱정도 했었는데 무사히 도착했고 올리뷰에서 리뷰 마감일도 조정해주셨습니다.
2. 나이 지긋한 추기경들 속에 마흔 일곱 살 젊은 동양인, 김수환 추기경
리뷰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그만큼 김수환 추기경님이 대단하고 독보적이고 자랑스러운 분임을 강조하고 위해서가 아니라-물론 그런 분입니다만-, 이런 위치에 오르게 된 분 역시 한 때는 그저 평범한 어린이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책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김수환 추기경님은 어린 시절에 신부님이 되서 좋을 게 뭐 있나, 장사꾼이 되서 내 가게도 갖고, 예쁜 색시하고 알콩달콩 아이들도 낳아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린이였습니다. 이 어린이가 자라서 전쟁 통에 사제가 되고, 유학을 다녀오고, 마산 교구장, 서울 대교구장을 거쳐 1969년 추기경 임명식에서 다른 나라의 나이 지긋한 추기경들과 함께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기사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쉽사리 그 사람은 보통사람하고 전혀 다른, 타고난 능력과 기지를 갖춘 인물이라고, 나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와 요구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낮아지고 전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는 어렵지요. 저는 모든 보통사람들의 내면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길가에서 풀빵 장사하는 청년에게 성인의 일면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동이 어려우신 이웃 어르신들께 풀빵 한봉지 갖다드리는 것으로도 그 사람의 내면에는 사랑과 빛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다수가 어차피 그렇게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언제나 사랑과 봉사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분이셨고, 평범한 어린아이로 인생을 출발하여 자신의 사제로서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돌아보면서도, 우리나라 최초,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조각배였지만,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보수하고 틀을 바꿔나가며 우아하고 굳건한 범선이 되셨다고나 할까요. 그 지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또 그 후의 진실로 소중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어머니, 어머니

↑ 김수환 추기경님을 사제의 길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신 분, 어머니.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 자녀가 무조건 부모님이 바라는 길로 가지는 않습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갖게되면 마치 자신의 의지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고 또 그 길이 자신에게 맞다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적성에도 맞고 부모님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니까요. 김수환 추기경님은 독실한 천주교인이셨고, 사제 서품식에 감명을 받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권유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시면서 갈등도 많이 하셨고, 또 본인이 정말 원했다면 과감하게 공부를 그만두고 평범하고 행복한 한 남자로서의 삶을 사실 수 있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 계기로 이 길이 자신의 길이라 확신하시게 되고,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평생 독실한 종교인이자 막내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후원과 사랑이 물론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아주 잠깐만 옆길로 새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 TV, 책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는 어머니의 삶을 칭송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물론 자식에게 본인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보살핌을 주신 어머니들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경우만 자꾸 강조하게 되면 마치 그것이 어머니가 된 모든 여성이 추구해야 할 절대 가치이고,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닌, 여성으로서, 또 한 직업인으로서의 필요를 표현하고 삶을 요구할 때 마치 그 어머니는 무책임하고 사고방식이 이상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녀들이 생겨날 수 있고, 어머니를 이해하기 보다는 필요 이상으로 미워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라고 해서 아버지로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취미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도 있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경우는 남성이 어차피 바깥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관대한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인간에게 한가지 역할만 집중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부당한 개인의 희생으로 인해 그 주변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 구조는 가족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많은 눈물을 낳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고, 당시 만약 남자로 태어나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종교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룰 수도 있는 분이셨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어머니로서의 힘겨운 삶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남편을 잃고 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셨고, 두 아들 모두 사제가 되어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분이 기회를 얻으실 수 있으셨다면 어땠을까요? 아들들에게 기대를 거는 대신, 본인이 사제나 수녀가 되어 삶의 기쁨을 체득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굳이 결론난 이야기에 다른 가능성을 부여해보는 이유는, 지금의 사회도 사실상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외국인에게 배타적입니다. 그러나 왜 같은 사회에서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여성에게까지 배타적이고, 이권을 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일까요? 그들의 발목을 묶고 있는 여러 여건들에 눈을 돌리고 함께 고치려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그저 여성의 타고난 특성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타인들도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기 쉽습니다. 최근에 2011 세계 경제 컨퍼런스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습니다. 외국인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여성들과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너무나 인색하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지요? 기회를 줄 때까지 기다려봐야 아무 소득 없다는 것을 저는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머니는 경제적인 이유로, 또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직자가 되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누군가 그 분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수녀가 될 길을 열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이미 두 아들은 장성해서 사제가 되었고, 본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부여해주는 사회였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강조점이 너무 다른 쪽으로 옮겨갔는데,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머니의 삶에 많은 감명을 받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성직자는 아니셨지만 성직자에 버금가는 사랑과 의지, 강한 영혼을 소유한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4.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던 학생들이 모이던 명동성당 옆을 걸으며
사실 책에서 인용하려고 많은 구절들에 인덱스를 잔뜩 붙여두었는데, 다 인용하기에는 너무 많아져버렸네요 ^^;; 한가지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몇가지 연결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명동성당 옆을 지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냥 보면 평범한 성당이지만, 이야기가 깃든 곳은 더 이상 평범할 수가 없지요. 아마 어린 시절에 뉴스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시위하는 학생들이 명동성당으로 피신해서 들어갔고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당은 종교적인 곳으로 성지이기 때문에 공권력을 투입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만 먹었으면 성당이고 어디고 치고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왠지 그 말이 제게는 어떤 경외심을 안겨주더군요. 갈 곳 없는 탈북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대사관 문을 넘어 들어가려고 할 때와 같은, 남의 일 같지 않을 때, 가슴이 울컥해지는 심정이라고 할까요.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은 6․10 국민대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조금씩 흩어져 가두시위를 벌이고 오후 여섯시부터 성당으로 모여든 학생들을 성심을 다해 돌보고 보호해주셨다고 합니다. 얼마 후, 경찰은 강제연행을 결정했다고 통보했습니다.
p.258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정부 당국에 정확히 전해주십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찾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이튿날 학생들은 성당에서 마련해준 버스 석대에 나눠 타고 소속학교로 돌아가 해산했고, 만약을 대비해 신부들도 그 버스에 몇명씩 나누어 탔었다고 합니다. 사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아무런 물리적 힘도, 공권력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종교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서야 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내부적으로 병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세계 천주교의 내부 문제, 범죄가 보도될 때 많은 충격을 받고 그 종교 전체를 나쁜 것으로 왜곡하기 쉽습니다. 마치 대다수 기독교인들을 X독교인들이라며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성을 짐승만도 못하게 대하는 반인류적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이슬람 사회에서도,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금쪽처럼 아끼는 남성들이 있음을 생각할 때-영화 ‘참새들의 합창’의 부지런하고 인자한 아버지도 무슬림입니다-, 부당한 왜곡이 있어서는 안되며, 범죄는 물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각 종교들이 끊임없이 행하는 선행과 사회 봉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그런 뉴스들을 언론매체에서 적극적으로 보도해야겠고요.
뉴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가끔 신문지 정리를 하면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사는 오려서 스크랩하곤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책하고 관련없는 이야기같은데,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니 계속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p.248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다. 4박 5일의 순례 일정에서 교황은 절두산 순교 성지를 방문한 다음 바로 광주로 갔다.…… 5․18의 상징 장소인 금남로와 전남 도청을 먼저 방문해 5월의 영혼들을 위로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몇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훌륭한 종교 지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 무렵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사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니 그의 이러한 순례는 세계인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 또한 김수환의 지속적인 권유과 부탁의 결과였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혹시 이 분이 내가 일전에 기사와 사진을 스크랩한, 시복식을 받았다는 故 교황님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봤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는 역사상 가장 짧은, 사후 6년만에 복자로 추대되었다. 이후 최소 1건의 기적 사례가 추가 입증되면 성인으로 추대되게 된다.
이분하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인연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었네요. ^^ 꼭 이 경우만이 아니라, 저는 천주교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여길 수도 있는 순명-윗사람의 명에는 반드시 따른다는-이라는 철칙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구요. 사실 누구든 자신의 이권을 위해 이기적이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정치나 기업 일에 있어서는 내부 고발자나 투표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만, 청빈을 추구하는 성직자들이 그럴 것 같지도 않고, 또 만약 나쁜 경우가 있다면 그보다 윗사람이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이니까요. 물론 교황을 선출한다든지 하는 중요한 일은 투표로 결정한다고 합니다. 다만 모든 사소한 일에서부터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버린다면 전세계 신자들이 한 가족처럼 연결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겠죠. 또 세상 어디를 가도 전례과 교리, 교회구조가 똑같다고 하네요.
그런 천주교의 장점을 보여주는 한 예로 넘어가보겠습니다.
p.14
"나도 천주교이오“
미군 헌병은 수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일본 사람이잖아.”
수환은 조선 사람인데 학병으로 끌려왔다는 점을 설명했다.
복사를 설 줄 아느냐는 질문에 수환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인 노미네 빠뜨리스 엣 필리이 엣 스피리뚜스 상띠(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일본 땅인 지치시마라는 섬에 끌려간 조선인 신학생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인에게 일본인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던 그가, 이후 로마로 가서 교황을 방문하고, 당당한 한국인으로 한국 천주교 사회를 대표하는 추기경이 되는 것입니다.
5. 열린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
p. 275
성령이 일하는 것을 우리가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만 국한하여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같은 단체는 교회 단체는 아니지만 교회가 할 만한 일을 먼저 실천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이 일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언젠가 경주 석굴암에 가서 넋을 잃고 불상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품인 성상들을 로마 바티칸에 가서 보았을 때는 5분 이상 한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저는 내 안에 불교적인 피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는 이러한 요소를 거부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와 대화를 나누고 거기에서 고유하고 불멸하는 가치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이 몇명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그들에게서 성당에 나오라고 끈질긴 권유와 회유, 심지어 비난까지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그들 성품 자체가 그런 것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성당 자체에서 지나친 전도는 하지 않도록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독교인들에게서는 생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길가에서 붙들리거나, 느닷없이 집에 쳐들어와서 그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있지요. 이런 행동은 비신자들의 개인적인 신념과 사고방식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전도하고자 하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켜 끌어들이기는 커녕 천리 밖으로 쫓아내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솔직히 기독교인들의 열성적인 전도 노력이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정이 아니라, 새 신도들을 더 데려와 자신의 위신도 세우고, 어쩌면 이후에 권사, 장로 등으로 추대되는 데도 역할을 하는 등의 이기적인 동기, 그리고 기독교인이 아니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배타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종교인이라면 본인이 작으나마 자신의 종교를 부분적으로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 종교에 부정적인 마음이 들 정도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천주교에 훨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아마 TV등에서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님, 이해인 수녀님등이 교류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 비신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종교인이라면 이런 열린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외치면서 심하게 배타적이라면 그만한 자기모순도 없겠지요.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지나치고 강요적인 전도가 행해지고 있다면 종교단체 자체에서 좀 자제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도 나름의 시스템과 가족적인 개념이 있을텐데 왜 교파가 다르고 교회가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비난과 무시만 일삼고, 중구난방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또 자세히 들어가면 장로교는 어떻고, 감리교는 어떻고 분파별로 다른 점이 있겠지만, 똑같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점에서 서로 협력하고 어느 정도는 행동을 통일하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비신자가 그들의 종교 체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어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전도하는 것 정도는 못하도록 통제하고, 선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종교가 되는 것 정도는 본인들이 자연스럽게 가져야 할 기본 목표가 아닌가 싶네요.
6. 김수환 추기경님이 하늘로 가신 날


↑ 추기경의 직책을 맡게 되면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게 된다.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직책이며, 교황 선출권을 갖는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천주교도 아닌 불교의 석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으셨듯이, 영혼이 깃든 예술이나 훌륭한 인품을 갖춘 분에 대해서는 곧잘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을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평전을 전에 읽어본 적도 없고, 그저 TV에서 인터뷰나 소식 등을 보고 우리 사회의 거목인 동시에 마음 따뜻한 분 같다고 생각한 것 뿐인데, 2009년 2월 16일,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전국의 신자들이 명동성당에 구름같이 모였을 때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한 대단한 명성 때문이 아니라-사실 전 그런 것에는 감동을 못 받는 편입니다.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서 수만명이 모인 장례식이 열린다 쳐도 별 느낌이 없을 것 같네요.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사랑의 영향 아래 있었는가, 이제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심정에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네요. 김수환 추기경님이라고 영원히 사실 수도 없는 노릇인데, 사람 욕심이 그런 것 같습니다. ^^ 며칠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었지요.
항상 곁에 있으면 소중함을 잊는다고 하지요. 있을 때 잘해야 되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김수환 추기경님 살아계실 때 미사에라도 참석해서 뵈었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이다보니 혹시 아무개씨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나오실까봐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제가 존경하는 정치인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이 가까운 지역에 방문했을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뵈러 갔었습니다. 뭐 한번 봐서 뭐 다름이 있겠나 하겠지만,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제 인생의 큰 부분 중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꼭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고 찾아가 멀리서라도 뵙고 오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
7.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하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다

책 말미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오래된 앨범처럼 나열되어 있습니다. 특히 젊으셨을 때 사진 보면, 젊은 선생님이나 서점 주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량한 인상이신데, ‘보통 사람들 속의 영웅’이라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저는 슈퍼 히어로라는 개념은 믿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 속에서 영혼의 빛을 밝게 켜고 불씨를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들이 영웅으로 부상하며, 또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사랑과 친절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꼭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과연 영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의 현실은 롤모델과 영웅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말이지요 ^^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직자의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하셨습니다. 저는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던 대로, 다음 생에서는 성직자가 아닌 신자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추기경님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벌써 받았으니까요.
8. 또 한분의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

↑ 정진석 추기경 교황 바오로 6세 접견 1970년대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김수환 추기경님 다음으로 추기경에 임명되신 분이 정진석 추기경님이십니다. 신자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비신자분들에게,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분으로서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훌륭한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이분들의 특징 중 하나가 겸손이고, 그러다보니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잊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은 그분들을 돕는 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일이고, 또 그러다보면 세상을 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분들보다 화려한 축구스타나 연예인들만 너무 조명을 받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존경받을만한 점이 있지만, 과연 평생을 존경하고 배워야 할 롤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과 존경하고 배우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니, 어린이들을 위한 전기에서처럼 단점과 실수가 모두 편집된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완벽한 사람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던가요? 최선을 다하는 의지와 주변을 향한 사랑,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재능마저 죽여버리는 오만한 타고난 천재보다 진정 빛나는 겸손하고 선량한 미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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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연구소 20일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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