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라이프 서평] 나는 진짜 삶을 살고 있는가
필 맥그로의 ‘리얼라이프’를 읽고


↑ 기다리던 택배 도착! 서평을 위해 책을 제공해주신 올리뷰와 문학동네에 감사드립니다. ^^
↑ 책 속에 끼워 고이 간직한 서평 안내문과 리얼라이프 책!

↑ 책 한권으로 든든한 인생보험 한번 들어볼까요? ^^
1. 자기 개발서, 필요할까?
브리짓존스의 일기라는 영화에서 보면, 브리짓 존스가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한 책 제목들이 달린 자기 개발서들을 한껏 꽂아놓고, 또 한껏 갈아치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영화 상에서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한가로운 휴일 오후 커피를 마시면서, 또는 마음에 문젯거리가 쌓여 해답을 찾고 싶을 때,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그 책들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때 그런 책들을 마련해 놓고 읽는 브리짓 존스가 참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했었는데-그 책들이 다 좋은 책일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 책들을 구비해놓고 살면서 도움을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막상 서점에 가면 픽션이나 논픽션 쪽으로 손이 가는 것이 사실이더군요. 학생 시절에는 비싼 교재비 쓰고 나면 도저히 책에 돈을 더 쓸 마음이 들지 않았고, 졸업 후에는 일하면서 읽을 시간이나 있겠어, 하는 생각이었죠.
중고등학교시절, 정확히 자기개발서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시형 박사님의 저서들을 독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제 여러 사례와 박사님의 해석이 곁들여진 재밌는 책들이었는데요, 그때는 재미도 있고 막연히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싶어 읽어두었던 것인데 나중에 살면서 그런 사례들이 주변에 보이는 것이 참 신기한 느낌이더군요. 박사님의 입장에서는 아마 숱하게 본, 사실 특별하고 희귀한 케이스는 아닌데, 본인들은 자신만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으며 도저히 해결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 참 이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는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죠. 최소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문제를 확대해석하고 해결조차 모색하지 않는 경우로 빠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 필 맥그로는 대체 누구?

우리나라에서는 이시형 박사님이 유명하신데, 정확히 가르면 분야가 좀 다르실지도 모르겠지만 정신건강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보면 필 맥그로-오프라 윈프리 쇼에 자주 등장하셨는데 닥터필이라고 불리셨죠.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치약 이름 같기도 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항상 필 박사님이라고 부른 셈입니다. - 박사님은 미국의 이시형 박사라고 보면 됩니다. 상대적 기준으로 둘 중 어느 분이 낫다 어떻다 하는 건 이 글의 논점에서 빗나가는 이야기구요, 이시형 박사님이 우리에게 친숙한 만큼 이 분도 미국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인물이라는 이야기죠.
↑ 젊은 시절 사진을 쓰신 것 같습니다. 완전 인상 좋으신데요? ^^ 형사나 탐정 스타일 같기도.
이 분이 쓴 ‘리얼 라이프’라는 책은 보기에도 두껍고 자기개발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 한권 정도는 최소한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도 인생의 양념 같은 구실을 하지만 이런 책은 삼계탕의 인삼 같다고 할까요?
3. 이 책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저는 인상적인 내용은 메모해가면서 읽어보았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사람의 취향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잡지에 보면 흥미로운 내용의 테스트지를 가끔 볼 수 있죠. 내게 맞는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 등등. 뭐 그렇게 소프트하고 흥미롭지는 않을지 몰라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읽어나가다보면 재미도 느낄 수 있고 나 자신과 주변의 상황, 문제에 대해 몰랐던 점이나 경시했던 점이 하나씩 보이는 테스트지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테스트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일단 테스트지부터 풀어보고 또 관련 내용을 읽어볼 수 있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실제 사례가 들어있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무작정 무언가를 내놓기보다 사람을 설득하고 먼저 이해시키는 느낌이 들어서랄까요. 이 책에도 필 박사의 상담 사례, 또 가까운 친지의 사례, 필 박사님 자신의 경험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위주로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바쁜 사람들을 위해, 또 중요한 논점을 더 강조해주기 위해-학창 시절에도 중요 부분에 밑줄 그어 주시고 그 부분에서 시험 문제 내시는 선생님들 너무 좋았잖아요-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찬찬히 앉아 읽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 부분들만 발췌해서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려도 좋을 듯 하네요.
4. 이 책에는 무슨 내용이?
필 박사님이 기독교인이셔서 그런지 몰라도, 7일을 포맷으로 해서 인생에 닥쳐올 수 있는 비극 일곱가지와 사례, 해결책 등을 제시해 놓으셨는데요, 필 박사님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비기독교인 분들이 읽기에 거부감을 느낄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필 박사님 본인도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고 서술하고 있고, 기독교인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나도 기독교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다’ 뭐 이런 문장 정도니까요. 기독교인 분들은 좀더 친근감을 가지고 읽으실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참고로 다음 제시하는 내용은 제가 이 장의 내용을 읽고 이해한대로 알기 쉽게 풀어 적은 것이지 있는 그대로 발췌한 내용이 아닙니다.
제 1일 - 상실
언뜻 떠올려보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TV에 보면 보험 광고가 자주 나오죠.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동반자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중복 보장이 되는 보험을 열개를 들어놓았다 하더라도 절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죠. 상실, 가까운 이의 죽음, 자신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 2일 - 공포
학생시절에 부모님께 성적표 들고 가기가 두렵더라, 하는 건 흔한 이야기죠. 하지만 그 원인만큼은 이 장에서 다루는 공포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 장에서는 다루는 ‘실패가 두렵고, 주변인들의 반응이 두려워’ 자신의 꿈과 자아를 내팽개쳤다는 것을 깨닫는,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거의 내 인생 전부를 헐값에 넘기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는 쓰디쓴 날입니다.
제 3일 - 적응성 붕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이 너무나 혹독하고 힘들어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지금이 더 좋다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거나 꿈많은 어린 시절을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고, 동반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집안의 환자도 돌봐야 하며, 직장에서는 ‘그 따위로 할거면 집어치우라’는 닥달을 들으며 실적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며, 시간이 남을라치면 조용히 앉아 차를 하잔 마시거나 독서, 영화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학교에 가서 급식을 돕거나 유치원 행사를 도와야 하는, 정말 아주 몸이 열두개라도 모자란 사람이 되어 살다가 한계점에 이르러 ‘이젠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바닥에 대자로 뻗게 되는 날입니다.
제 4일 - 질병과 사고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실생활에서는 어떤가요. 당장 눈앞의 청량음료는 달고, 운동할 시간은 없고,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풀어주어야 하지만 어쩔 때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도저히 스트레스를 풀 방도도, 그런 방도를 생각해내어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의사의 갑작스러운 선고,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나는 날입니다.
제 5일 - 정신질환
요즘 젊은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아직 사회 분위기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해가 아주 후진국 수준인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아직까지는 친구들, 이웃들과 속내도 털어놓으며 살 수 있는 분들이 많아서 상담사 분들, 정신과 의사들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심장에 문제가 생겼는데 의사는 찾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심장에 좋은 거 뭐 없냐, 하고 물으며 다니다가 무언가 잘못 먹어 더 악화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말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많이 일어납니다. 왜 그런 범죄가 일어날까요. 물론 악독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겠지만, 사회가 버리고, 가족이 버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소중한 정신질환자가 방황하다가 악에 받쳐 저지르는 일은 전혀 없을까요? 우리 사회는 얼마나 건강할까요? 이런 사람들을 감옥에 쳐넣으면 문제 해결인가요? 사회 어느 한 구석에는 같은 문제로 정신질환을 겪고 또 같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타날 텐데 말이죠.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들, 사회의 정신 건강에 모두 주의를 기울인다면 지금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에서는 자신 또는 가족이 정신질환에 걸렸을 때의 대처법을 다룹니다.
제 6일 - 중독 (몰입과는 다름)
다행히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하면 평생 마약류에는 손도 대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음성화 되어 있지 가족들이 다같이 보는 TV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하는 모습이 보이거나, 골목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마약을 팔려고 말을 걸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중독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방에다 어린 자녀가 굶도록 방치해놓고, 아이를 키우는 육성시뮬레이션게임을 하던 아버지 때문에 자녀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학창 시절 버스를 기다리면서 라디오를 듣다가, 결혼한지 몇년 되지도 않았는데-결혼생활을 오래 했다고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출근 전, 퇴근 전, 게임하는 남편의 뒷모습만 보고 사는 여성의 사연이 나와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나네요.
저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무조건 그게 중독이라고 보지는 않는데, 이렇게 자신의 기본적인 의무도 팽개치고 가족들은 무시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중독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도저히 나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중독에 관해 다루는 날입니다.
제 7일 - 난 대체 왜 사는거야
많은 분들이 인생의 목표를 갖고 사십니다. 좋은 성적, 성과, 가족의 행복, 세상에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봉사하는 일 등등. 하지만 어떨 때는 나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며, 이 세상에 하등 존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살 충동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사례들을 보면서 특히 이 장에 등장한 사례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장이며 개인적인 행복은 다 꾸겨서 어디 서랍장같은 데 쑤셔놓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어느날 이 아이들은 다 커서 일주일에 건조한 이메일 한통이나 보내는 게 그 모든 헌신의 결과가 되어버려 삶이 황폐해진 어머니.
참 감사할 줄 모르는, 심하게 말해 짐승같은 자식들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내 자식이든 누구든 간에 내가 넘치도록, 내 자신을 다 쏟아부어 사랑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분이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애정은 감사보다 한심함과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이 애정이 엇나가면 자식들이 감사보다는 부담, 심지어 미움까지 느낄 수 있잖습니까.
이런 날은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다루는 장입니다.
5.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 그런 건 나도 다 알아, 뭐 새로운 내용이라고’, ‘내 문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야, 아무도 이해 못해’라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구제할 수 있는 일들은 ‘절대 실천하지 않는’, 거기다 알콜 중독 증세까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문제의 네다섯가지를 한꺼번에 갖고 있는 사람이었죠. 아마 그런 분들은 많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절망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필 박사의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물론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꿔놓는다면 코웃음치는 분들도 있겠지만, 되레 상처를 더 받거나 이용당할까봐 누군가에게 사생활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또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그닥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홀로 인생을 끝내버린 연예인들이 이런 책이라도 읽었다면 결과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돕지 않을 수도 있죠. 나는 노력하는 데, 불공평한 상황이 계속 생길 수 있죠. 하지만 나까지 나 자신을 버리면 될까요?
이 책에서 말하듯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죠(p.46). 하지만 변화는 작은 것부터 가능할 겁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사지, 유학, 명상강좌 등이 새로운 인생을 열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p.203).
사실 이 리뷰를 쓰려고 수많은 내용을 메모했는데 그 내용들은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잘 읽으시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시리라 믿습니다.
미국에는 거의 우리나라 인구수와 맞먹는 공포증(Phobia)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p.326). 부디 이 책을 읽음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확대해석하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얼어붙은 상태에서 벗어나 도움도 얻고, 다른 사람의 조언도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의 소제목 중 하나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일단 살아남아라,
자신을 돌보라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