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즈음,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내가 했던 첫 번째 일은 모 은행의 마이너스 계좌를 만드는 것이었다. 입사와 동시에 독립을 해야 했기에 목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십 수 년 간 내 뒷바라지를 위해 빚을 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소위 안정된 직장에 입사하여 좋은 신용등급 덕분에 ‘저리’로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는 동료들의 깨알 팁이 나를 ‘은행에서 대접받는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무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이너스 통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 축으로는 정기적금으로 돈을 모으면서도 예측되지 못하는 불안을 이유로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는 손에 움켜쥐고 있는 바보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은행에 얼마의 이자를 내고 있는지 계산해보기 전까지, 나는 여전히 ‘은행에게 대접받는 고객’인 줄 알았다.
은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금융기관’이다. 고객들에게 예금 이자를 주고, 목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목돈을 빌려주기도 하며, 때론 푼돈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황금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이런 혜택을 주는 기관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은행 말만 믿고 전세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집을 사기도 하며,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수익 좋은 상품에 전 재산을 투자하기도 한다. 그들은 늘 신용등급이 높은 나에게만 살짝 알려주는 고수익상품이니 지금 매수하지 않으면 손해 볼 수도 있다는 말로 우리를 자극하곤 한다. 마치 이 시간이 지나면 모든 혜택이 사라져버리는 홈쇼핑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은행의 거짓말에 속고 속고 또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금융기관의 흉악한 거짓말이 폭탄돌리기를 하다 어느 순간 터져버리면서 시작된다. 이 책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는 2000년 이후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금융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어떻게 고객을 이용하고 농락하는지 내부인의 눈으로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폭탄돌리기로 크고 작게 피해를 본 세계를 향한 저자의 작지만 절절한 외침으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그레그 스미스는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잘나가는 금융인이었다. 골드만삭스의 살벌한 입사테스트를 통과해 부사장의 지위까지 올라갔고, 2002년 9·11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심지어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에게 엄청난 제재를 가하는 와중에서도 살아남았다. 12년 동안 몸 바쳐 일해 온 그가 내부고발을 통해 골드만삭스와 월스트리트의 치부를 폭로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고, 왜 그는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출처. sbs
자본주의의 맹아,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금융공학이라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통해 금융소비자의 쥐락펴락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점차 몸집을 불려온 금융기관들은 기업의 주식을 사고파는 일에서부터 채권이나 통화와 같은 금융상품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자연·환경·경제 현상을 예측하는 일, 나아가 상품을 사거나 팔 권리를 매매하는 것과 같은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공학’의 개념까지 끌고 들어오는 금융상품의 핵심이 결국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어디에 더 많이 내포하는냐에 따라 이익도 함께 따라가는 것에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이나 개인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정보도 많은 것이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장에서 금융기관의 판매자가 제공하는 정보만 가진 ‘그 수많은 개인’은 자신이 투자하는 상품에 대해 당연히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고, 그에 따라 막대한 손해를 입는 것 또 한 ‘그 수많은 개인’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금융기관의 판매자는 복잡한 금융상품의 알고리즘을 제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금융기관의 이익에 복무해야 할 의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레그 스미스는 월스트리트의 유서 깊은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가 점차 고객들을 멍청이, 조종하기 쉬운 상대로 여기게 되었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금융기관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1999년 이전만 해도 골드만삭스 금융시장에서 투자은행의 윤리, 가령 존 화이트헤드가 만든 14원칙(책 181~182페이지)과 같은 고객의 투자에 대한 수탁책임과 같은 원칙을 지키면서 신뢰 있는 투자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도맡아 했었다. 그러나 이후 회사는 점차 프롭 트레이딩과 같은 방식을 통해 스스로 거대 금융기관이 되어가고자 하였으며 고객들에게 합리적 투자 조언을 해주는 것 대신 고객들을 은행과 경쟁하는 거래 상대방으로 간주하며 고객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비단 골드만삭스의 문제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라는 포메이션으로 갈아탄 세계가 점차 금융시장의 비대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경쟁자가 되어야 하며 내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돈을 악착같이 강탈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처. 국제신문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이 일부 돈 있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로만 들릴지 모르겠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은 한 달 월급으로 겨우겨우 생활하고 남은 쥐꼬리 만 한 돈으로 적금 몇 푼이나 넣으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전셋집 하나 얻으려고 은행 대출 담당 직원에게 몇 번이나 굽신거렸는지, 대출을 받으려면 연계된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 원하지 않던 펀드 통장을 만들어야 했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발 금융위기가 나와는 무슨 상관이었는지 모르겠다. 대출 금리는 왜 오르고 내리는지, 신용카드를 만들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만 쓰라고 그러는지, 전세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지금이 내 집 마련 기회라며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지, 그저 그런 것들이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금융기관들이 이야기하는 고객은 더 이상 회사가 돌봐줄 고객(顧客)이 아니다. 회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의심조차 하지 않을 ‘호구’이자 ‘멍청이’이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기관들은 그들의 비윤리적 행태를 통해 버블을 키웠고 엄청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을 잃었으며,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이윤 중심적 사고는 더 큰 폭탄이 되어 전 세계를 돌고 있다. 이 폭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그리고 더 이상 국가는 국민의 피해를 막아줄 수 있는 자비로운 부모가 아니다. 외환위기에 쓰러져가는 금융기관을 국민의 피 같은 공적자금으로 일으켜 줬더니 수많은 규제를 풀어 파생상품시장을 키우고 신용카드 발행을 남발하더니 결국 카드대란을 일으키게 했던 것은 누구였는지, 키코 사태 때 금융기관의 편을 들어준 이는 누구였으며,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걷어내는 것도 모자라 싸게 대출해줄테니 집을 사라고 부추긴 것은 누구였는가. 또 한 번의 폭탄이 터지는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충분히 예고되고 있다. 이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레그 스미스가 이야기하듯 금융기관이 다시 초심을 찾아 도덕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면 되는 것일까.
좀 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투자를 통해 금융시장의 ‘정상화’만 회복하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와 같은 금융시장의 ‘비정상화’는 자본주의의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의 잘잘못을 가리고 새로운 선장을 찾는 데에만 힘을 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로운 선장을 고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가 제대로 바다를 지나왔는지,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토론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