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인 출판사 책덕의 ‘김민희’를 생각하면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땡땡책협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그의 멀티 플레이어다운 모습들.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강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행정과 실무적인 일까지 뚝딱 해내는 장면. 김민희를 아는 사람들이 왜 그를 두고 ‘천재 김민희’라고 호명했는지, 저절로 수긍이 되었더랬다.
나는 책덕의 책을 통해 ‘미란다 하트’를 알게 되었고, ‘민디 케일링’과 ‘에이미 폴러’를 만나게 되었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즐겨듣고 있던 시기에, 이런 외국의 여성 코미디언의 존재를 뒤늦게 접하게 된 나는, 그야말로 ‘왜 여성은 웃기지 못하는가’라는 편견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당시 책덕의 에세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김민희는 나에게 신문물(!)을 전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내 추측으로 김민희는 타고난(!) 천재였고, 영어를 잘 하고, 편집자 출신이니, 책 또한 손쉽게 뚝딱뚝딱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저자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편집자의 역할과 수고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출판과 유통구조에 대해서 나 같은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 <이것도 출판이라고>를 읽는 내내, 나는 ‘책’이 아니라 ‘출판’의 과정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1인 출판의 고된 과정을 그린 책이다. 번역서의 판권을 따오는 방법에서부터 출간된 책의 마케팅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귀엽고(!) 치열하게 그려진다. (귀엽다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김민희가 직접 그린 자신의 캐릭터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업무 처리 방식에 비롯된다. 가령, ‘교보찡’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는 일과 같은..ㅋㅋ) 대형 출판사와 유통사가 시장을 틀어쥐고 있는 이 시스템 안에서 1인 출판사가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너무나 직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어떤 분야도 큰 기업들이 장악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하지만 김민희와 책덕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에서 버티고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은 안 돼,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저게 바위가 맞는지, 우리가 던지는 게 날계란이 아니라 삶은 계란이라면 좀 더 낫지 않은지, 질문하며 몸으로 부딪힌다. 방구석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던 김민희는 정말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란다처럼>이라는 번역서 한 권을 들고 세상의 구석구석으로 가 닿고 있었다. 그 과정들이 눈물 나게 귀엽고, 또한 너무나 치열해서 눈물이 났다. 동시에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하고 있는가?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안정’이라는 보이지 않은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저 하나의 부속품으로 굴러가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을 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되긴 할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책의 제목을 <이것도 ‘인생’이라고>로 바꿔 읽어도 좋겠다 싶었다. 결국 사는 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책 한 권 내고 망해도 좋다’는 신념(!)으로 1인 출판의 길을 걷고 있는 책덕은, 그 한 권을 시작으로 코믹 릴리프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덕후’다운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여 여성 코미디언의 에세이를 출간하고 있다. (코믹 릴리프라는 시리즈가 만들어진 과정도 정말 책덕답다!) 그리고 독자로써 작지만 큰(?) 바람이 있다면 책덕의 이 시리즈가 언젠가는 한국의 여성 코미디언의 에세이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이상하고 멋진 것을 발견하는 독자가 되어, 너드걸이 활개 치는 세상에 일조해야지. 김민희와 책덕의 프로젝트에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