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월으로 사는 삶-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2022년 한겨레 '올해의 책'
박정미 (지은이)들녘2022-10-28
잠깐이라도 꿈 꿀 수 있어 좋았다.
소비 생활 0원은 버는 대로 모을 수 있다는 희소식이었으니
0월으로 어떻게 살지. 제목을 보고 이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혼란스러웠다. “자연인“이라는 모케이블 프로그램에서조차 최소한의 소비를 하면서 살던데 이런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글의 시작은 필자도 20대에 꿈꿨던 워킹홀리데이. 용기가 없고 안락한 현재를 포기할 수 없어 도전하지 못했던 일을 과감하게 도전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대리체험이라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탐독했다.
지은이 박정미는 아직도 ‘나’를 찾아다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나’의 소개는 늘 어렵단다.
역마살을 타고난 떠돌이처럼 보이지만, 콕 박혀 있을 ‘집’만 찾아다니는 집순이로 지금은 조용히 지리산 숲속에서 반려견 심심이와 산다.
성질이 급해 물이 다 끓기도 전에 차를 우려내지만, ‘곰돌이 푸’ 도사님의 가르침대로 애쓰지 않는 삶을 수행 중이고 세상 누구보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릴 줄도 안다(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충만한 삶을 살았지만, 남은 삶도 모조리 다 즐겁게 살아내고 싶다고 한다. -알라딘에서 발췌-
꿈을 품고 시작한 런던에서의 삶은 고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고용주의 계속되는 갑질(부당한 초과근무와 고용주의 해고위협. 결국 부당해고를 당했다)에 시달리다 안 쓰고 살 면 되지라는 단순한 계산에서 방법을 찾다가 시작한 우핑과 스쿼팅, 스킵다이빙.
∙우프(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자원봉사자와 유기농 농장을 연결하는 상호 교환 네트워크로, 봉사자는 무료 숙식을, 호스트는 일손을 제공받는다. 농장에서 키운 농작물로만 먹고, 오직 ‘손노동’만으로 농사를 짓는다.
∙스쿼팅(squatting) 빈 건축물을 점거해 살아가는 스쿼팅은 영국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
∙스킵 다이빙’(skip diving). 쓰레기통(skip)에 몸을 던져(diving), 먹거리 등 유용한 물건을 줍는 행위다. -발췌: 한겨례 문화책&생각/등록 2022-11-11 05:00 수정 2022-11-11 15:32-
지은이는 기증받은 낡은 자전거와 히치하이킹을 통해 런던을 시작으로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그리스, 인도까지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다. 히치하이킹때 운전자로부터 종종 “섹스?”라는 “불손한 요청”을 받지만 결과적으로 무사했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손에 땀이 차고 공포를 느꼈다.
“˂선행 베풀기˃라는게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면, 당신은 그것을 내게 도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에게 갚음으로써 대가 없는 선행을 이어가는 거죠. 이렇게 서로를 돕는 선행이 퍼져나갈 때 우리의 삶은 사랑과 가능성으로 가득 차게 될 거예요“. -본문40쪽에서-
나는 ‘원한다’를 ‘필요하다’로 착각하고 있었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이런저런 핑계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66쪽에서-
모든 일은 딱 알맞을 때에 일어난다. ‘더 높은 자신’은 우리존재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모든 경험과 만남과 사건을 계획하고 준비해놓았다. -본문423쪽에서-
저자는 워킹홀리데이로 생겼던 사람에 대한 불신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로 치유했다.
큰 뜻이 있어 생활을 바꾼 것이 아니란다. 단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시작했는데 살다보니 비건이 되었고 환경운동가, 공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기대했듯 이 책을 읽으면 타는 듯 한 여름 전기세를 줄이고 나아가 생활비를 줄여 노후자금에 보태자라는 큰 그림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와르르 무너졌지만 때론 가슴 따뜻하고 울컥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더해서 책을 덮으면서 “와!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지”라는 놀라움과 “이렇게 까지 해야해” 라는 불편함도 얻었다.
불편함의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눈감고 있었던 자본주의 비정함을 각성하게 되고 내 생활을 돌아보고 비교하게 되는 부작용이 잠깐 생겼었다. 그래도 이런 부작용에 끄떡없는 독자라면 한번 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미래를 준비하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