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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지은이),신유진 (옮긴이) 1984Books 2022-05-15 원제 : Les Années
그 시간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늦가을낙엽 같이 고색창연한 색깔의 표지에 노란색 불어제목, 한 장의 흑백의 사진.
하얀 띠지위의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눈에 성큼 들어온다.
이 책은 194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저자가 1941년부터 2006년까지의 시간을 순서대로 감정을 절제해서 건조하게 써내려갔다.
작품 속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기, 결혼과 출산을 거쳐 이혼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자전적인 글이지만 글 속에 ‘나’는 없고 ‘그녀’와 ‘우리’,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녹아 흐른다.
『세월』은 순간의 시간을 묶은 사진이 곳곳에 소개되는데 인물들을 묘사하고 장면을 설명한다. 또한, 그것을 매개체로 해서 당시의 주변과 생활환경, 더 나아가서 정치와 경제까지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사진 한 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책이다. 그러나, 책속에는 사진이 없다. 독자가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
읽다보면 지역과 시대는 다르지만 전쟁과 이후의 삶, 성 평등, 세대차이, 정치적 격동기, 과학의 발달에 적응하기 등 일어나는 일은 우리와 비슷하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가는 행동과 말, 책이나 지하철 포스터만큼이나 웃기는 이야기들이 권장하는 사고에서 빗겨나간 곳에, 이 사회가 자신도 모르게 침묵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 사회는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고독한 불편을 안겨준다. 어느 날 갑자기 혹은 조금씩 깨진 침묵과 무언가에 대해 터져나온 말들은 결국 인정받게 되지만, 반면 그 아래로 또 다른 침묵이 형성된다. <130쪽>
책을 읽으면서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내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마음과 고민에 동조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 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 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318쪽>
하지만, 불편한 책이기도 하다.
책에 목차가 없다. 어떤 내용인지를 알려면 332쪽의 두께가 있는 책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프랑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끊임없이 나오는 지명, 인물, 사건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 속 성에 대한 이야기는 수위가 있어 불편할 수도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어느 정도 인지가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