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흥미를 확 유발하는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앙증맞고 예쁜 표지만큼이나 괜찮을 거라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인지 이 책의 독후감(?)을 써야하는 지금의 내 심정이 더 씁쓸하고 난감한 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런 곤란함을 안겨 준 『신출내기 안도선생』 을 괜시리 또 한 번 노려봐 준다
이 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책이다. 제목을 보라. '신출내기 안도선생'. 이 제목을 보고 당신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어떤 내용이 펼쳐질 거라 상상이 되는가? 물론, 독자로서 읽어보지도 않은 작품의 내용에 대해 미리 이러쿵 저러쿵 할 권리는 없지만, 제목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기에 그것으로 내용까지 흥겹게 상상해 보는 것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처음 제목과 책소개 글을 보고 떠올린 것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교사가 되어 겪게 되는 황당하고 색다른 경험들과 그런 경험들로 인하여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었다. 물론 아예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에피소드였는데, 이 책에선 학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고는.
『신출내기 안도선생』은 보험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짤리기 직전인 중년의 샐러리맨이 민간기업 사원을 교사로 채용하는 특채에 합격해 중학교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겪는 일화를 위주로 하여 주인공 안도선생이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책이다. 일단, 소개글과 작가의 취지는 이렇다 이거다.
허나 말 그대로 그건 그냥 취지였을 뿐, 독자로서 내가 받은 느낌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안도선생이 선생인가? 미안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안도씨가 단 한번도 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대체 왜 배경으로 학교를 택한 것일까? 작가의 의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샐러리맨이 안식처이자 도피처로 찾은 새 직장 역시 기존의 직장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이 비합리적인 일이 비일비재한 인간성 말살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굳이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어도 좋았을 텐데.
뭐, 백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도 좋다고 치자. 굳이 학교를 택했다면, 학생은 어디있는가? 분명 책카피에는 안도씨가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기 위한 좌충우들 스캔들!' 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불만이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마지막까지 그저 직장(=학교)에서 짤리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약점과 비리를 캐려 수를 쓰던 인간이 갑자기 마지막 2장을 남겨두고 어떤 학생이 물어본 수학문제를 한 번에 풀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제를 다른 선생들은 풀지 못했는데 자기만 풀 수 있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아, 이게 보람인가? 이 길이 내 천직인가보다. 난 진정한 교사였어' 라며 어설픈 '선생님' 흉내를 내는 것은 차라리 코미디라 하겠다. 눈물겹다. 우스워서.
내용이 산으로 가면, 마지막으로 기대볼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힘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친화력 강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였다면 내용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충분히 너그러워 질 수 있다. 허나 안도선생을 비롯한 주변 선생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간들이 다 재.수.없.다. 단 한명에게도 애정은 커녕 300쪽이 넘는 분량을 읽는 동안 접한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안도선생의 그 천박하고 역겨운 '왕가슴' 타령은 때때로 책을 던져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한 번 정도라면 웃고 넘어갈 얘기겠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기억에 남는 건 그 '왕가슴' 타령 밖에 없을 정도라면 말 다했지 않은가? 작가의 천박한 유머감각에 경멸을 보낼 뿐이다. 설마 이걸 웃으라고 넣은 건 아니겠지. 쯧쯧
이 책의 작가가 일본에서 나오키 상을 포함 다수의 상을 탔다고 한다. 내 여태껏 '일본에서 무슨 무슨 상을 탔다' 하면, 특히나 나오키 상을 받았다 하면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읽기도 전부터 찬탄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이 책으로 인해 나의 잘못된 맹신은 상처입고 파괴되었다. 고마운 점도 있긴 하다. 'xx상 수상' 이라는 권위에 기대 객관적으로 작품을 보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점수를 퍼 준 편파적인 독자였던 나의 공정성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렇지만 한 작품만 읽고 작가에게 주홍글씨의 낙인을 새겨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 것이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그 수많은 상을 다 수상한 것이 맞다면 분명 이 작가의 작품에도 무언가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을 게다. 앞으로 이 사람의 책이 또 출간된다면 나는 그 또한 읽어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잠시 판결을 보류하겠다. 휴정! 탕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