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khskym님의 서재

제목이 "일"이란다. 요즘같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발하고 독특한 제목으로 반쯤은 먹고 들어가는 시대에 달랑 "일" 한 글자가 제목이란다. 안그래도 충분히 딱딱한 소재인 "일" 인데, 아예 제목으로 해놨다. 일단 기발하고 호기심끄는 제목으로 독자의 호감도를 50% 이상 높여놓고 시작하는 다른 책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직장에서의 몸가짐, 마음가짐에 대해 도덕교과서에나 나올 말들을 구구절절 딱딱한 어조와 문체로 가득 늘어놓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은 그렇고 그런 딱딱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오히려 저자의 자서전에 가까운 책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되는 자화자찬. 솔직히 너무나 면구스러웠다. 평소에 잘 알고,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라도 본인 입으로 자기 칭찬을 늘어놓는다면 어쩔 수 없는 반감이 드는 판국에 이 저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호감은 커녕 생소할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한두번도 아니고 쓰느니 자기 자랑 뿐이다. 역겨웠다. 반쯤 읽으니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는 심정으로 계속 읽다보니, 어느 순간 '피식' 실소가 나왔다. 그 다음엔 '푸하하하'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계속 되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문득 친밀감이 느껴졌다. '이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잘난 척을 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 애정이 넘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이다.' 라는 깨달음이 왔다. 겉보기엔 그저 엘리트 인생, 고생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인생같아 보이지만, 잠깐잠깐씩 아주 짧게 저자의 인간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본인은 그저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도량이 좁은 사람들, 즉 소인배들의 시기와 질투쯤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 저자의 애처로운 허세를 느꼈다. 분명 많은 고통을 겪었을 테지만, 본인은 인정할 수 없다는 오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난 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자와 같은 경우를 수도 없이 당했고, 나 또한 저자와 같은 허세를 부리며 간신히 견뎌냈다. 아마도 그러한 점에서 일종의 동병상련같은 기분이 들었나보다. 저자의 자화자찬에 대한 반발심만 극복하면 이 책은 아주 괜찮은 책이 된다. 자서전이나 그 비슷한 책의 경우, 독자에게 얼마나 호감을 얻느냐에 따라 책 또한 그 호불호가 결정되는 것이다. 반발심이 남아있다면, 저자가 하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것은 그저 역겨운 자기자랑이 되어 버릴 뿐이다. 다행히 나는 그 고비를 넘겼기에, 저자가 하는 말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인생의 멘토를 고전에서 찾는 모습이 설핏 낯설기도 했지만, 고전을 자기 나름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해 일에 적용하는 것을 보며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시련이 닥쳐올 때 '이것은 하늘이 내린 천명이야. 하늘은 일부러 내가 실패를 맛보도록 한거야. 여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라며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힘을 내어 시련에 도전하는 자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요컨대 인생에 있어 시련이란 행운보다 훨씬 더 자주, 그리고 거대한 소용돌이를 안고 찾아오는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든 공평하다. 평생 아무 고난과 시련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 문제는 이 시련에 임하는 자세인데, 보통은 그저 좌절하고 절망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나부터도. 나에게 닥친 시련을 제3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법을 찾아 도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무한한 신뢰는 내게 충분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자기 자신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해주었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도대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 믿음과 신뢰를 요구할 것인가?? 얼토당토 않다.

불쾌감으로 시작해 유쾌함과 깨달음을 잔뜩 주면서 끝난 책 『 일 』. 얻은 게 많은 책이다.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책 읽기에 있어서도. 초반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던져버렸다면, 나는 결코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의 참을성 없고 한쪽 면만 보는 좁은 시각의 책읽기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아주는 책이라 하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