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고 아이들의 시험이 거의 마무리 단계다.
추석 땐, 삼호랑 잠시 커피를 마셨다. 부대 앞 두 개의 비올라 2층에 '대안공간 숲'이라는
카페에서였는데 분위기가 괜찮았다. 주인장은, 서울말씨로. "어제 연주를 했더니 팔이 좀 아파서 서빙이 어설프다."고 하면서 아주 친절한 서빙을 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와 드럼이 세팅되어 있고, 실제 연주가 가능한 공간이 구석에 있었다. 부대 앞에서 약속이 생기면 늘 들어갈 만한 카페을 알지 못해 난감했는데, 정해놓고 갈 곳이 생겨 반가웠다.
삼호를 만나면 꼭 부대 안을 한바퀴 돌게 된다. 평소에 동선이 단조롭다니보니, 큰 맘 먹지 않으면 바깥 바람을 쐬며 산책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간만의 학교 산책은 참 좋다.
그런데, 1년에 한두 번 들리는 학교의 모습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이번엔.. 시계탑이 없어지고 또 무슨 공사를 하고 있더라. 체육관 쪽도 허물어지고 아직 높은 담장이 쳐진 채 공사를 하고 있던데, 이번엔 시계탑을 허물고 그 아래쪽으로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가 또 진행중이었던 거다.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엔 길이었던 곳이 막혀있기도 하고, 건물이 서 있던 곳에 잔디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기도 하다. 옛날 동아리들이 있었던 건물이 그새 더 많이 낡아서, 새로 들어선 번쩍거리는 첨단 건물들과는 따로 노는 것같은 인상을 풍긴다.
변함이 없는 건 어두워질 무렵의 가로등 불빛들과 공기 뿐인 거 같다. 벌써 20여년이 흘렀으니까, 전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건 터무니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편 용도와 내부 구조를 알지 못하는 건물들이 주는 낯섦과 떠밀어냄이 조금 서운하긴 하다. 하지만.. 약간 묵직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학교 공기는 여전히 날 편안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 그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걷는, 1년의 이 한두 번의 산책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