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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님의 서재
  • 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정은영.생경.성영주
  • 15,120원 (10%840)
  • 2025-02-10
  • : 238

신간 에세이 <잔나비를 듣다 울었다>는 이혼을 경험한 세 사람의 이혼 회고기다. 아니, 어쩌면 고통과 상실을 견딘 자신을 활자로 옮겨 놓았으니, 성장기에 가까운가.

 

헤어짐이라는 욕구를 결혼 후 제도권 안에서 실현하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절차를 따라야 한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지난하고 괴로울 터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고통의 기본값 위에 쓰여 읽는 내내 함께 아팠다. 리뷰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망설여져 일주일을 묵혔다. 내 삶의 일부가 그곳에 있었고, 나의 어슷한 통증도 행간 어디쯤엔 알몸 그대로 있는 것만 같아 내내 소란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이들과 나의 차이는 그저 과거형이냐, 현재형이냐일 뿐.

 

‘내게 이혼은 느닷없는 결별이었고 생의 전복이었다. 이혼했다는 것은 서로를 쓰다듬고 할퀴고 다시 쓰다듬고 참아내고 살았던 그 많던 날과의 단절이었다. 생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견디자던 그 허망한 약속을 깨는 일, 오래된 습관을 단박에 끊어내는 일, 미처 소진하지 못한 사랑의 형태를 서둘러 구겨버려야 하는 일, 심장이 찢어지고 사지가 뜯기고 피가 철철 흐르는 일이었다. 지독했다.’ (42p)

 

이혼을 지독함으로 느꼈던 한 저자는 1년 후에야 이혼을 실감했다. 그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오로지 좋기만 했던 날들이 도처에 그렁그렁했다고 말했다. 지독함을 지나니 슬픔에 젖은 그리움이 몰려오다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다행히도 저자는 자신의 삶을 영화에 비추어 보며 그 시간을 견뎠다.

 

‘내 삶이 영화라면, 지금 이 시간이 분명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꼭 필요한 시퀀스일 거라고 여기며 견뎠다.’(p59)

 

또 다른 저자는 ‘쥘 수 없는 것을 쥐겠다고 비루해지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썼다. 이혼이라는 그의 선택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었다.

 

‘몸은 없고 말만 남은 자와 언어의 세계가 닿지 못하는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자의 대결이란 씁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존엄을 지키고 싶었다. 동시에 나의 존엄은 상대가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자에게 나의 존엄을 의탁해서는 안 된다. 내 존엄은 오로지 나에게서 비롯된 행동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 (p119, p121)

 

저자는 그럼에도 결혼이 남긴 귀중한 것이 있다고 밝혔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에 있는 힘껏 가 닿아보았다는 경험, 혼자 힘으로는 훨씬 어려웠을 경제적 안정감을 누린 경험, 나와 전혀 다른 가족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경험, 내 힘으로 가족을 구성해 본 경험, 인생의 한 시기에 타인을 내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해본 경험,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가 그 귀중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은 혼인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모멸감을 참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선언에는 자기 인식이 바탕이 된다. (…) 어느 날 문득 평온함을 느꼈다. 결속에서 떨어져 나와 나로서 온전하다는 느낌이 차올랐다.’ (p149, p150)

 

이혼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마지막 저자는 결혼 내내 사라졌던 대화가 소장을 사이에 두고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에 아파하며, 그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결혼이라는 선택에 실패란 없고, 다만 행과 불행의 교차가 있다는 것. 이혼은 결혼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성립 가능한 결과이지만, 결혼의 실패가 곧바로 이혼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죽음이 곧 삶의 실패가 아니듯. 삶의 끝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듯이 결혼과 이혼도 그렇다.’ (p231)

 

책은 7년 만에 조금 평온해진 마음으로 또박또박 나아가는 사람, 자신의 존엄을 더는 상대에게 의탁하지 않겠다는 결심 후 새 터전에서 온전해진 사람, 가치관 차이와 불통의 시간에서 더는 서로의 세계로 겨루지 않는 시간으로 옮겨간 사람의 이야기다. 이들이 자신을 감당하며 살아갈 날들을 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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