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복귀작
마야 2021/03/05 23:06
마야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 신경숙
- 12,600원 (10%↓
700) - 2021-03-05
: 3,317
책은 엄마가 병치료를 위해 서울로 떠나면서 오래된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돌보러 가게 된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재발견하는 소설이다.
자신의 탓으로 딸을 잃었다고 여기는 주인공 헌은 모든 관계가 무의미해졌다. 고향 J시도 방문하지 않은 지 벌써 5년 째. 홀로 계신 아버지가 신경 쓰여 J시로 향한다. 오랜만에 만나 아버지는 헌이 기억하던 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면장애로 몽유병 환자처럼 집 여기저기를 다니다 피로에 절어 혼절하는 상태가 되기도 할 정도다. 헌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야 깨닫는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먼 이국의 사람들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라고 해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딸이 되어주었으면 수면장애 같은 것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본문 중에서)
헌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다 자주 멈췄다.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부모를 지켜보는 자식, 부모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의 자식이 마주했던 삶의 무게를 가늠하느라. 또 때때로 마주하는 서글픔을 달래느라.
작품 속 아버지를 보편의 아버지로 상정하기에는 시대와 세대가 너무도 달라졌다. 읽는 이들이 적어도 30대 후반 40대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혹 작품에 온도차를 느낀 독자에게 첨언하자면, 환경 차로 인한 몰이해의 영역이므로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비롯되는 보편의 정서, ‘가족을 향한 연민’이라면 그의 사유는 깊고 노련하다. 평생 소처럼 일했으나, 권위를 세우지 않는 아버지. 못 배웠으나 솔직하고 소탈하며, 아들의 가출에 생계를 내려놓고 찾아다니는 부성애를 갖춘 아버지. 멀리 돈을 벌러 갔어도 큰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따뜻한 감성. 기력도 기억도 노쇠해가는 중에도 아내를 염려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이 모든 설정은 각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아버지를 서술하는 4장에서 완성된다.
딸을 잃어 모든 관계가 무의미해진 주인공 헌,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기습공격을 당한 그마저 아버지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독자는 공감의 영역을 벗어나 이미, 저마다의 기억의 파편들을 꺼내 몰입했을 것이다. 신경숙이라는 이미지에 붙잡혀 몰입하지 못하면 모를까.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