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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님의 서재
  • 소년을 읽다
  • 서현숙
  • 11,700원 (10%650)
  • 2021-01-25
  • : 5,68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면,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담을 수 있을까. 손과 어깨, 머리에 힘이 들어간다. 가볍게 다루기 어려운 탓이다. 딱딱한 문체를 가진 탓에 이 따뜻하고 진심어린 1년의 기록을 지면에 옮기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서현숙 선생님의 책<소년을 읽다>는 진정성과 통찰, 여운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췄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그가 소년원에서 소년들과 국어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소년원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공간이다. 대개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모르면 ‘무서운 것’이 되기에 십상이고, 쉬이 그것을 배척한다.

소년들은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저자가 만난 소년들은 ‘사회로부터 격리 되어야 할 나쁜 짓을 저지른 아이들’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깨버렸다. 그곳에는 태어나 처음 책을 읽어본다는 아이, 타인을 삶을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 간식 하나 스티거 하나에 달뜬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소년들은 저마다 안온하지 못한 사연을 지닌 채 그곳에 들어왔다. 17년 동안 한 번도 누가 책을 읽어준 적 없고, 단 한권의 책도 읽어본 적 없는 민우의 이야기는 아이를 보호해야 할 사회의 부재를 실감하게 한다. 6개월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라면으로 몸무게를 30킬로나 늘리는 동안 가정과 학교는 아이를 방치했다.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 동수, 2년 만에 소년원을 나가도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명구, 극심한 가정폭력을 당한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안온하지 못한 삶을 견디다 그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저자가 원했던 대로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이라는 낯선 공간 너머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게 한다. 책 속 사계절 지나다보면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이 ‘쩡’하고 깨지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장마다 적어도 한 번은 코끝이 매콤해지거나 심장이 간질거리는 그런 떨림을 줄 테니까.

무엇보다 아이들과 나눈 시간들을 대하는 저자의 따뜻한 태도와 아이들을 향한 신뢰의 마음이 감사하다. 우리 사회에 아직 이런 어른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 시간의 함께 읽기 경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젠가 아이들이 알게 될까?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에서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막 살지 않을 것 같다. 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돌보며 다시 삶의 길 위에 올라서게 되지 않을까. 두 다리에 힘주고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본문 중)

“아이들과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관계는 아니게 되었다. 누가 일방적으로 무엇을 베푸는 관계도 아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얼마만큼이든,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란한 색, 강력한 힘은 아닐지언정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다.” (본문 중)

저자의 진심은 새로운 계절이 와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독자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에게 주는 영향력의 크기가 광활한 우주 정도는 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없는 소년과 그들에게 ‘책’으로 다가서는 선생님 이야기는 자주 코를 벌름거리게 하고, 그 감정의 파고는 예상보다 크다.

책장을 덮을 때 즈음 사회를 향한 기대가 더 자란다. 아이들의 면면이 당장은 달라지지 않을 지라도, 다시 어두운 자리로 가게 될 지라도 ‘삶에 심어진 작은 씨앗이 언젠가 어여쁜 싹을 틔울 거라’는 따뜻한 바람.

한 아이의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우리는 책임이 있다. 서문을 시작으로 절반은 찡한 마음으로 절반은 사부작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만난다면 천천히 스며드는 따뜻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은근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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