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머리를 읽고 ‘흡’ 실소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을 인지한 나의 좌뇌에 띄워진 생각은 이렇다.
작가님의 머릿속은 지금도 목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를 하고,
긴 편은 아니지만 짧지만은 않은 어중간한 옅은 흑심 빛 치마 교복을 입으며,
시험 일주일 전 책모서리에 즐겁게 놀 궁리를 하고,
우연히 아카시아 꽃 내음을 맡을 때면 설레는 감성을 지닌 열일곱 소녀의 머릿속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녀의 글의 장독대에는 장난스러움이 가득 담겨있다. 소재만 만난다하면 어느 방법으로 마음을 두드릴지 모른다. 그래서 목차를 보고 이런 내용이겠지 짐작하다가도 예상과 다른 정반대의 생각을 만나 온갖 감정들이 과하게 모여 폭발된다. 나의 학교일상이 그려져 한번 웃고,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두 번 눈물이 핑 돌고, 심오한 표정으로 철학자마냥 손으로 턱을 잡으며 세 번 사색에 잠긴다.
그녀의 순수 프러포즈의 목적은 학생들이 시는 어렵지 않고 편하게 읽고 즐기는 것. 그렇다면 이미 그녀는 목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입장에서 이보다 더 쉬운 시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혹시 작가님은 지금도 학교생활을 몰래 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의심이 돈다.
나의 백과사전에는 철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이 어리다,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며, 그 순수함으로 인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므로 좋은 의미를 뜻한다. 이번 책에는 철학 편이 추가되었다. 철학을 쉽게 풀어내기 어려워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왜 철학을 포함시켰을까? 그녀가 철이 들지 않아서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려 철학 시를 쓰시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철이 들려면 사과에 못을 박아놓고 드셔야 할 텐데...
작가 선생님의 기운을 받아 여드름과 살구라는 상큼한 대상물을 가지고 시 한 수 지어 보았다. 윤동주 형님께서는 시가 쉽게 씌여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책했는데, 내 시는 얼마나 쉽게 쓰이던지 내 시는 감성에 겨워 눈을 깜빡하니 글이 쓰여 있었다.
물론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포인트는 시가 쉽게 쓰이고, 펜을 쥔 내 손이 종이 위 펼쳐진 무대를 휘저으며 즐거웠다는 점이다. 얼마나 놀랍던지! 나에게도 장난스러움과 감성이 생겼다니 내가 쓴 시를 보아도 자화자찬! 감탄스러워 웃음이 절로 났다.
‘나는 보여주기로 했어'
지금으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은 주간, 가끔 문을 두드리는 몇 주간의 슬럼프를 겪었던 적이 있었다. 즐거운 학교생활에 대한 열정이 샘솟던 학기 초와 달리 삶에 특별한 변화도 없고, 버려진 담뱃재의 스며들어가는 약한 불씨처럼 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날려가 신발 밑창만 닳도록 질질 끌던 무기력한 내가 있었다.
세상의 룰에 따라야만 하는 운명이, 그것이 내 운명인 줄만 알았다.
어느 때와 같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시를 읊으며 눈을 아래로 끌어 당겼다.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읽어나가니 내 눈에는 눈물 같은 것이 고였다.
‘나는 보여주기로 했어’ 대담하게 당당하게 다시 살아가자는 속뜻.
내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나를 잘 알았기에 꺼내기 갈망했던 한마디였다. 혹시 작가님을 통해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전해주신 작가님이든 날 생각해준 누군가이든, 그가 미래의 나였든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감사함에 몇 번이고 되새기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문장은 굳세지 못한 나를 일깨워주는 진심이 담긴 아홉 글자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인생을 맛있게 만드는데 풍미의 재료 ‘사랑, 희망, 즐거움’을 가득히 담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재료로 간을 낸 요리의 색과 맛이 어떠한지 는 나에게 달려있다.
이제 다른 나에게, 나의 삶이라는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한다. 내가 만약 그가 가르쳐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면, 그 프러포즈는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