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작품이라기에 애초부터 읽지 말자고 했던 소설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도 소설 속 그 소년이 꿈 속에 나타나 잠을 설친 기억이 있기에 <채식주의자>는 또 얼마나 꿈 속에서 나를 힘들게 할까 싶어 포기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호기심에 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읽던 게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채식을 고집하는 영혜의 미래가 몹시 궁금했고 그녀를 둘러싼 식구들의 태도를 보면서 그들 각자의 사연에도 몰입이 됐다.
이 책은 3개의 작품이 연결되어 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채식을 선택한 영혜를 중심으로 그녀 남편의 시선에서 서술된 채식주의자가 첫 번째 작품이고, 영혜 형부의 시선을 담은 몽고반점이 두 번째다. 마지막은 영혜 언니의 시선이 담겼다.
꿈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영혜. 끈질기게 이어지는 특정한 꿈이 인간을 이토록 바꾸는 게 가능할까. 개연성이 떨어진다 싶었지만, 읽어보니 그녀의 채식은 꿈 때문만은 아니다. 눈 앞에서 죽어간 강아지를 본 순간부터 영혜의 마음 속에는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자란 듯하다. 쌓이고 쌓이던 그 거부감이 연속된 꿈 때문에 격렬하게 터지게 된 이야기. 게다가 그 거부감은 어릴 적 당한 폭력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다른 대상에 치환해 생각하게 한다.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영혜의 고기 같은 존재는 무얼까. 언젠가는 그 대상이 참을 수 없게 느껴져 영혜처럼 극단적 반응을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 도사린 그 공포가 언젠가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영혜를 생각하는 형부. 그는 아내에게 들은 몽고반점 이야기를 계기로 영혜를 특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꼭 몽고반점 때문임은 아닌 듯한 인상을 준다. 처제와 관계를 맺게 되기까지 그의 오래된 생각들이 결국 그를 그 지경까지 이끈 것 아닐까.
영혜와 형부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소설 속에서 희한하게 빠져든다. 둘의 상태가 조금은 공감되는 희한한 경험을 작가는 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혜 언니의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언니의 이야기인 세 번째 작품은 다시 현실 속에서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언니의 이야기. 알고보니 영혜 못지 않게 상처입은 영혼이었다.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생활력 강하고 살림까지 잘하는 여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켜켜이 쌓인 죄책감과 의무감은 남편을 만나서도 다른 방식으로 쌓이고, 죽어가는 동생을 보면서는 자해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느껴진다.
두 자매가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나는 이 소설이 자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매끼리만 아는 어린 시절의 상처, 자매만 이해하는 서로 다른 삶의 태도,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산다해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자매만의 유대감.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인연,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매우 다른 길을 가는 개별성, 결국엔 자매라는 끈끈함이 웬만한 문제는 쉽게 해결해주는 신비함.
다르지만 함께 또 같이 각자의 길을 걷는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몰입해 읽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