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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팔랑 거리는 보라
  • 축구왕 이채연
  • 유우석
  • 9,720원 (10%540)
  • 2019-09-27
  • : 1,768

며칠 전 초등학교에 들렀다. 채 30분도 있지 않고 나왔지만, 교정을 걷는 동안 본 풍경을 기억한다. 햇살이 화창하게 비치는 평일 한낮. 운동장으로 작게 모래바람이 일고 그 사이를 실내화 가방을 들썩이며 걸어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환했다. 교문을 통과한 아이들은 노란 학원 봉고차에 올라타거나 재잘거리며 학교로부터 멀리 걸어 나갔다.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며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학교는 끝났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그 상황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그 광경을 풍경으로 기억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십 대 때, 그리고 그전에도 꽤나 치열하게 살아왔다. 세상에 전부가 친구였을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학교는 관계의 장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만 하니까. 그래서 더욱이 네 마음과 내 마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뒤엉킨 채 자라야 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축구왕 이채연>의 주인공 채연이도 지금 당장 친구와의 관계를 걱정하는 열세 살 아이다. 작은 오해로 시작된 소민과의 관계에서 묘한 이질감을 맛봤고 (우리 모두가 아는 소외의 은근함에 대한 것이다) 새로 사귀게 된 지영이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게 소원인 채연이에게 ‘축구부’라는 다소 뜬금없는 이벤트가 찾아온다. 물론 동생이 몸담고 있는 축구부가 있어 축구를 잘 알지만 축구에 ‘대해서’라면 채연이도 초면이다. 더군다나 운동이라면 질색이지만, 축구부에 소민이도 지영이도 합류하게 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일단 가입’을 택한다.

축구는 무엇보다 팀워크가 주된 기둥이 되는 운동이다. 여럿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고 여럿이어서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채연이와 아이들은 이겼지만 찝찝한 시합, 졌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 시합을 두루 겪어내며 차츰 성장해나간다.

채연이는 축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 ‘운동장을 달리며 온 신경을 공에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일어나는 증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밟히고 다치고 넘어뜨리고 넘어지는 상황에서 친구의 손을 잡고 다시 몸을 일으키게 될 때, 몸은 고되더라도 2) ‘마음만은 축구공처럼 단단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그 느낌을 안다’고 아이가 힘을 주어 말하는 장면은 채연이가 이제 정말 사랑하는 일이 생겼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만나 운명처럼 사랑하게 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듯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제 다시 삑,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갈 것이다.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기억 하나가 차곡히 쌓여 이내 둥그런 공 하나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이 그 공을 주고받으며 모래를 흠뻑 뒤집어쓰고 달릴 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단 하나. 그들을 소리 내 응원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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