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포상으로 가장 많이 받은 간식은 사탕이었다. 막대 사탕도 아니고 봉지 사탕 한 알. 선생님들과 할머니, 엄마가 쥐여줬던 사탕 한 알은 내가 그때 가장 자주 먹었던 간식이었고 가장 뿌듯한 마음을 들게 하는 상이었다.
독후감을 다 쓰거나 연극 연습을 마무리하거나 부반장으로 당선이 되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끝날 때마다 사탕은 주어졌다. 어렸을 적엔 밥도 씹지 않고 입에서 빨다가 삼킬 만큼 단맛을 좋아해서 단맛의 결정체인 사탕 한 알은 내겐 커다란 동기였다. 사탕을 받을 때면 어른들의 칭찬도 함께였다. 잘했네. 잘했다. 같은 한 마디 말과 사탕 한 알을 받아 나는 그 순간들을 달게 삼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얼마간 사탕도 칭찬도 받지 못하면 이상하게 모든 일이 재미가 없었는데, 혀와 마음에 맴돌던 단맛이 사라지고 떨떠름한 떫음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내가 사탕을 받기 위해 필요했던 건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시작’ 전에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했다. 글쓰기를 마무리할 용기, 연극 배역에 지원할 용기, 학급 선거에 나갈 용기 등은 그 시절 가장 씩씩한 마음을 먹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첨벙>의 주인공인 엠마는 ‘다이빙대에서 높이 뛰어오를 때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매일매일 다이빙을 아주 열심히 연습’하며 ‘매일 저녁 다른 다이버들의 모습도’ 챙겨보는 멋진 다이버가 꿈인 아이다. 하지만 노력이 결과의 전부가 아닐 때가 아이에게도 오고 아이는 그 순간에 부딪힌다. 순간에 부딪혀 속상한 아이에게 친구가 찾아온다. 작은 동전 ‘페니’다.
언젠가 언니가 내게 글쓰기는 계단 같은 것이어서 평평한 오르막길을 걷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단을 스스로 하나씩 밟거나 때로는 계단 같은 벽을 부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그 순간에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눈을 감는 일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엠마는 다음 계단을 친구와 함께 오른다. 오르기 위해서는 친구와 어른의 말과 아이의 용기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내게 필요했던 것이 사탕 한 알과 어른의 말과 용기였던 것처럼.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전해줄 마음 한 알이 아이들에게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 한 알이 아이들에게 다음 계단을 오를 마음을 먹도록 도울 수 있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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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멋진 다이버가 꿈인 엠마라는 소녀가 살았어요.-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