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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i Cuori Appassionati...
수많은 종류의 삼국지를 읽어보았습니다. 이재운 씨의 소설 삼국지나 키타카다 겐조의 영웅 삼국지, 그리고 미요시 토오루의 흥망 삼국지 등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한 이른바 모종강본이라는 너무 흔한 텍스트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반면 소설의 평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면을 늘려 권수를 많게 하여 책을 더 많이 팔려는 상업적인 의도가 짙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이문열 씨나 김홍신 씨 등의 평역 삼국지라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분이라면 크게 정사 삼국지와 연의 삼국지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대부분 아실겁니다. 정사 삼국지는 진수라는 사람이 기전체 ( 인물 중심으로 쓴 역사서 ) 로 쓴 책을 말하며, 연의 삼국지는 나관중이라는 사람이 조조를 중심으로 한 정사와는 달리 유비의 촉한을 정통으로 보고 허구를 많이 가미하여 만든 역사 소설입니다. 이러한 연의 삼국지에는 여러 판본이 있는데, 많은 다른 삼국지들은 모종강본에 근거하여 번역하고 나름대로 시를 덧붙이거나 구성을 아주 조금 변형하여 만든 것이어서 거의 똑같은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본삼국지의 저자인 진순신은 대만 사람으로 나중에 일본으로 귀화하여 시바 료타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인데, 그는 이 모종강본에 기초하지 않고 작가 자신의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정사도 아니고 연의도 아닌 아주 새로운 삼국지를 써나갑니다. 처음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조나 유비가 바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잠이라는 이름의 오두미도 교도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곧 일반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 전개 방식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삼국지 판도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관도의 싸움이 원소를 멸망시키기 위해 조조와 유비가 협력한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재밌었습니다. 장기전에서 승기를 노릴 것인가 아니면 바로 속전에 돌입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원소를 싸움터로 끌어내기 위해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척하고 원소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얘기인데 상당히 설득력있는 생각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것은 시기적으로 나중에 나온 ( 진순신 씨의 삼국지가 이미 오래전에 일본에 출간되었음 ) 이재운 씨의 소설 삼국지에서 차용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모조리 비슷비슷하기만 한 모종강본 텍스트의 삼국지에 질리신 분이라면, 제가 글 맨처음에서 추천한 다른 삼국지들과 함께 한번쯤 읽어보도록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조를 극단적으로 미워하고, 유비만 편애하는 흔하디 흔한 삼국지에 질려버렸거든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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