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p.89
책 제목을 쓰다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는데요. 싱아..? 물고기인 줄 알고 싱어라고 적었다가 아차 했네요. 그 많던 싱아는 도대체 뭐길래 누군가 다 먹었다고 하는 걸까요? 박완서 작가가 자신만의 기억만으로 썼다는 성장소설이라는 소개보다 싱아가 더 궁금했던 스테디셀러였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을 추천도서지만 저는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네요. 싱그러운 표지로 재단장하고 나왔다는 이야기에 손을 번쩍 들었거든요. 작가가 들려주는 한 시절의 기록들,, 누군가의 지독히도 개인적인 기록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송도 근처의 시골 마을, 박적골. 더 넓은 세상을 알기보다는 이 동네가 전부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앞에는 탁 트인 벌이 넓게 자리 잡고 있고, 어디에서나 실개천을 흐르며, 흉년이 지지 않는 넓은 농지를 다 함께 나누면서 지내는 오붓한 시골마을이었다는데요. 양반이라며 여자들은 송도에 가지도 못하게 하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을 혼자 독점하고 있는 이야기부터 공부를 시킨다며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가버린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의 동풍과 여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오빠와 엄마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한 이야기까지.. 가족과 집안과 동네에서 벌어지는 소소하면서도 사소한 수 있는 이야기들부터 굵직한 사건까지 막힘없이 펼쳐집니다.

한 가족의 역사,, 그것보다는 나의 역사라고 해야 더 정확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담겨있는데요. 그 시절에 한 소녀가 느낄 수 있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할아버지와 엄마와 오빠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도 보이네요. 고향인 시골 동네의 아름다운 추억과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함께 하는 가족,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크나큰 역사 속에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우리의 모습까지 말이죠.
그래서 싱아가 뭐냐고요? 그 시절, 시골에서 뛰어놀면서 흔히 뜯어먹었던 간식거리였다고 하는데요. 서울살이를 하면서 그 흔한 풀 한 포기 쉽게 볼 수 없던 주인공이 불현듯 떠올린 추억이었답니다. 모두가 서울로 향했지만, 그 시절 마음만은 고향을 향했던 모두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 많던 이웃들과 친구들이 전쟁과 이념과 차별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싶더라고요. 그런데 싱아라는 풀을 혹시 아시나요? 진짜로 그 많은 싱아는 정말로 누가 다 먹은 걸까요?

어떤 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국어사전을 오랜만에 펼쳐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너무나도 공감이 되더라고요. 굉장히 낯선 단어들,, 분명 한국어지만 요즘 사용하지 않는,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겨있더라고요. 하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오히려 이런 단어들 덕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시절 그 동네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 이후 이야기를 담은 또 한편의 소설, <그 산이 정말로 거기에 있었을까>도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는 화창하고 싱그럽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면, 속편에서는 조금은 어둡고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듯했거든요. 한국전쟁 이후 특별하면서도 독특했던 그녀의 삶에는 어떤 모습을 담았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너무 재미나게 독서에 빠졌답니다. 주인공의 순수함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 시절의 민낯을 너무나도 마주했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에 친근했다고 해야 할 지도..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