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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책방
  • 아주 느린 작별
  • 정추위
  • 16,200원 (10%900)
  • 2025-08-25
  • : 12,840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심호흡하자, 심호흡.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 그이는 환자잖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럴 수도 없는 상태야. 침착해야 해. 침착해.

p.69


대만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의 함께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에세이.. 이런 책소개 때문에 궁금해진 책을 만났는데요. 치매로 말을 잃어가는 배우자를 마주해야만 했던 그녀가 기록한 돌봄에 대한 솔직한 마음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랑하는 이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시간들에 대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무너져가는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시간에 대해.. 무거운 마음과 아픈 감정들이 담겨있을 듯해서 조금 망설이긴 했는데요. 마냥 고개를 돌려버릴 수만 없는 이야기였기에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답니다.




은퇴를 앞둔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그녀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닥치는데요. 평생을 함께 했고, 앞으로 남은 생도 함께 하리라 생각했던 남편 푸조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네요. 언젠가부터 뭔가를 까먹고, 방향 감각도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그냥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구나 했는데.. 설마 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돌보기 위해 조기 은퇴를..


하지만, 남편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네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3시간 넘게 목욕을 하고, 한밤중에 일어나서 산책을 가자고 하며, 산책을 나가서는 형네 집에 가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거나 집에 안 가겠다며 다시 돌아나간다고 하네요. 한밤중에 그녀의 영역이었던 부엌에서 온갖 접시를 다 꺼내기도 하고, 커피를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면서 집안 가득 커피잔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휴지란 휴지는 전부 주머니에 넣어놓기도 한다네요. 하루도.. 아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 그녀는 괜찮은 걸까요?



푸조와 내가 수십 년간 함께 걸었던 길을, 나는 지금 홀로 용감하게 걸어나가는 중이다.

p.186


함께 산책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남편과 함께 하는 은퇴 후 생활을 생각했던 그녀는 이제 혼자 걸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3년 동안 남편을 돌보면서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제대로 먹을 수도, 제대로 일상을 보낼 수도 없었기에 망가진 그녀의 몸과 마음을 이제는 조금씩 치유하고 있다네요. 훌륭하게 자란 딸의 응원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서 말이죠.​


남편 푸조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전문 요양시설에서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단독 돌봄에 공동 돌봄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했다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게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환자인 남편에게도.. 그가 의지하고 기대야 하는 아내에게도.. 그녀의 이야기에는 상실의 슬픔과 아픈 마음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 그녀의 사랑이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네요. 과연 우리도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요?




치매는 걸리기 전으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병입니다. 따라서 모든 증상이 곧 하나의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p.172


노화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겁니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천천히 예상할 수 있는 변화이기에 마음의 준비도 하고 삶의 태도도 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녀의 남편처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다가온다면..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마주해야 한다면.. 점점 사라져 가는 상대방을 지켜만 봐야 한다면.. 과연 어떨까요?


힘들겠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읽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요.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차마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네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관계는 마음을 무겁게 할 테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은 몸을 지치게 만들 테고,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은 정신을 헤집어놓을 테니까요. 이제라도.. 아니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조금 더 돌아봐야 할 듯합니다. 나 혼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예상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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