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커피 그라인더를 하나 구매했다. 요즘처럼 '전동 그라인더'는 아니고 핸드밀 방식으로 그 본체가 '목재'로 되어 있는 그라인더다. 그라인더를 구매하고 얼마 뒤에는 '모카포트'를 또하나 구매했다.
물품을 늘리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하나 둘 물건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꽤 고민을 하고 구매한 흔적이 있다. 첫째 모카포트와 핸드밀 그라인더 둘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구매한 아이템에는 꽤 만족하고 있다.
수동으로 커피 원두를 갈면 '바스락'거리며 갈리는 원두의 향과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날카롭게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아니라 촉각과 시각, 후각으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커피 제조' 자체부터 '커피'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콧 새비지'가 엮은 '간소한 삶'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간소한 삶'을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책을 읽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자동'이 되고 기계가 일상화 된 세상에서 '인간다움' 즉 '인간다운 감성'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야구'에서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최고 시속은 160km/h 이상이다. 이 엄청난 구속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투수들은 이 공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한다.
세상 이처럼 비효율적인 행위가 있을까. 인간을 위해 대신 공을 던져주는 '피칭머신'의 경우 '속도 제한'이 걸려 있다. 이는 인간의 '구속력'에 맞춰 의도적으로 낮은 속도에 설정된다. 기술적으로 이 피칭머신의 구속력은 200km나 300km 이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마운드 위에 투수가 아니라 기계 하나만 세워 둔다면 야구는 훨씬 효율적인 스포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야구'는 더 빠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계'들에게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이런 기계는 '선수'로 뛸 수 없다.
'스포츠'는 '효율'보다 '규칙'과 '절제'가 중요한 행위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라는 반칙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골'을 기다리고 있지만 축구에서는 '오프사이드 규칙'을 만들어 '골이 너무 쉽게 들어가는 상황'을 절제 시켰다.
초기 축구에서 '공격수'들이 효율적으로 골을 넣기 위해서 골대 앞에 그냥 서 있다가 긴 패스를 받고 점수를 만들어서 그렇다.
AI 이후 사람들은 '인간이 직접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느끼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리고 단순 '효율'이 아니라 '규칙'을 통해 '절제'된 '게임'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가치는 '결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폰'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1~200만원의 현금이 필요하지만 '아이폰'을 생산과정을 구매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결과물'은 싸구려일 뿐이다. 인류 전체가 그것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에 AI와 기계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에 더 큰 차치를 주고 있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본래 모든 것은 그렇다. 인간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 '가치'는 부여된다. '반짝거리는 광물'에 '가치'를 부여하면 '금'이라는 가치가 생기고 어떤 '종이'는 단순 문자와 숫자가 적혀 있을 뿐이지만 그 '광물'의 수백배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AI와 기계가 만들어내는 값싼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다양한 부산물의 감정들.
우리 모두가 그것에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 그것의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간소한 삶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워렌버핏'이나 '빌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세계 최고의 부자들의 특징이라면 물욕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삶의 방식이 단순하다. 어쩌면 액자속 그림에 코를 박고 사는 우리가 '그림 전체'를 감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림 전체를 조망하며 살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그림 전체를 바라보면 본질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소비'보다는 '시간과 경험, 몰입'과 같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돈으로 대부분의 결과를 살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오히려 '결과'는 흔한 '싸구려'가 됐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발생한 것에 우리는 가치를 느낀다.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천천히 종이책을 읽고, 스포츠를 감상하는 일은 어찌보면 자판기가 내려준 커피나 자극적인 쇼츠, 공장 기계들끼리 무한 기술 경쟁을 벌이는 방면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인간다운 삶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