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내용도 많지만 어떤 내용은 그것이 '뇌리'에 '탁'하고 박혀서 일상의 작은 습관이 되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킴 올루세이'의 '퀀텀 라이프'에 나오는 습관이다. 습관은 아주 단순한데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즉시 '주변'을 센다,는 전략이다. '엘런 헨드릭슨'의 저서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는 이와 비슷한 '전략'을 하나 소개한다.
'내면의 비판자를 잠재우는 법'에서 소개한 훈련법이다.
5-4-3-2-1 훈련이다.
모든 습관은 제일 중요한 것이 쉬워야 한다. 반복하기 쉬워야 그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낮아진 행동은 반복하기 쉽고 반복이 잦아지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5-4-3-2-1 훈련은 매우 쉽다.
첫째, 주의를 둘러보며 눈에 보이는 다섯 가지를 말한다.
둘째, 네가지 소리를 찾아본다.
셋째, 세가지 촉각을 느껴본다.
넷째, 두가지 냄새를 맡아본다.
다섯째, 입안의 맛에 주의를 느껴본다.
숫자의 규칙이 복잡하다면 개인의 방식대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벽장 줄무늬를 다섯 가지 세어보거나, 발가락이 닫는 바닥의 느낌이나 어깨 뒷편의 감각 혹은 코끗의 감각을 세밀하게 느껴본다거나, 쾌와 불쾌를 구분하지 않고 몇가지 주변의 냄새를 맡아보는 등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대면할 때, 나는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예전에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을 상담했던 경험이 있다. 아이는 대화를 할때, 묻는 질문에 항상 '수 초' 정도 늦게 대답을 했다.
개인적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이 1~2초 늦어지는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겠으나 어떤 질문은 1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보채지 않고 아이의 대답을 듣기 위해 언급한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 뒤에 있는 '책'의 권수를 세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짜증'이 '확'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짜증이 '확'하고 올라가는 그 순간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호흡'을 세거나 눈깜빡임 수를 세는 것이다.
'수'라는 것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해 센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강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쉽게말해서 우리는 숫자를 세면서 손으로 애국가를 쓸 수 없고, 마음속으로 호흡을 세면서 동시에 증오담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
숫자를 세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삶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거운 '아령'을 들거나 런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운동'의 효과도 전무하고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을 더 '영리'하게 해주거나 '피부'를 밝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숫자세기'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머릿속에서 하고자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나쁜 행동보다는 '덜' 해롭다.
주변을 세거나 숫자를 세는 것은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지만 떠오른 생각과 상념보다는 덜 나쁘기에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다.
'빈센트 반고흐'는 말했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속삭임이 머릿속으로 떠오를때면, 그때야 비로소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그림을 그리면 머릿속 속삭임은 그제서야 사라진다.'
대체로 사람의 생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불안감을 느끼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했던 우리네 선조들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었던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해 남은 그들의 '부정적인 유전자'를 받았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더 못나기 때문이 아니라 '손'이 아니라 '발'로 걷고 코가 아니라 '입'으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타고나기'를 그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실질적 위헙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굳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생존해 낼 수 있다. 되려 현대 사회는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그 '위협적 존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필요도 없다.
고로 그것은 단순히 우리 스스로를 갉아 먹는 사고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치 사용하지 않는 '맹장' 어느 기능 처럼 그렇다.
과거 '맹수'에게 노출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피식자들'은 스스로에게 '독성'을 분출했다. 이는 근육을 수축시키고 스스로를 '나 멋없는 고기야'라는 어필을 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포식자들은 독성을 내뿜어 상대를 죽이지만 피식자들은 맹수 앞에서 스스로가 맛없는 고기임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독성물질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을 독에 중독 시켜야만 했다.
초식동물들의 상당수는 '맹수'들의 저주파 울음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만든 독성에 의해 피부조직과 근육을 수축시켜 '얼어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300만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네발에서 겨우 두발로 걷던 '루시'를 만난다.
'그녀의 가족'들은 대부분 피식자들에게 도망다니고 밤에는 벌레나 쥐를 조심해야 했다. 언제나 긴장하고 불안한 삶을 살던 이들은 생존해 냈고 그 유전자가 지금 우리에게 와 있다.
그런 '감정'은 분명 '타고나고 자라며 분화한 감정'이겠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우리는 '타고난 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왜소한 몸이지만 운동으로 건장하게 키우고 누군가는 아는 바가 없어도 연습과 훈련으로 외국어를 익히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고로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연습 방법이 분명 필요하다. '엘런 헨드릭슨'의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는 꽤 쓸만한 이런 좋은 습관 만드는 방법과 요령을 정리해두었다. 앞으로 이중 몇몇은 페이지가 끝난 뒤에도 나에게 남아 좋은 습관을 남겨 줄 것만 같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